‘구이(九夷)로 떠나는’ 혹은 ‘구이에 오시는’ 공자를 둘러싼 화이(華夷) 개념의 변주
Variation of the Concept of Hwa-Yi(華夷) Surrounding Confucius ‘Leaving for Gu-Yi(九夷)’ or ‘Coming to Gu-Y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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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구이(九夷)에 대한 공자의 말은 다양하게 읽혔다. 오랑캐를 배척하는 모습으로 해석되거나 반대로 고귀한 오랑캐를 인용하여 중국을 비판하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구이로 떠나겠다’는 말은 후자를 대표한다. 그러나 ‘구이로 떠나는 공자’는 조선에서는 ‘구이에 오시는’ 모습으로 역전되었다. 14세기 이후 지식인들은 ‘기자가 조선을 교화했다’는 옛 전설과 ‘공자가 오시고 싶어했다’는 말을 연결하여, 조선이 오래 전부터 문명화된 곳이었음을 증명하였다. 18세기 노론 학계에서는 또다른 변용이 있었다. 노론의 한 갈래였던 호론에서는 조선을 특수화하는 이론을 구축하였다. 한원진은 공자가 ‘동쪽’으로 오고자 했음을 강조하며 조선만이 문명이 될 수 있고, 서북 지역의 오랑캐 – 암묵적으로 만주족 – 들은 원천적으로 문명화될 수 없다고 보았다. 낙론은 달랐다. 서종화는 덕성이란 점에서는 중화와 오랑캐의 구분이 무의미하다고 주장하였다. 홍대용은 오랑캐와 중화의 상호인정을 촉구하였다. 마침내 그는 ‘동쪽으로 떠나는 공자’를 ‘서북으로 떠나는 노자’와 연결하여, 사상과 지역에 구애받지 않는 보편 평등을 강조하였다.
Abstract
Confucius’ words on Gu-Yi(九夷, nine barbarians in the east) were read variously. They were interpreted as the rejection of barbarians, or on the contrary, as criticism of China by quoting the noble barbarians. The word ‘leaving for Gu-Yi’ represents the latter. However, in Joseon, ‘Confucius who will leave for Gu-Yi’ was reversed to ‘Confucius who will come to Gu-Yi’. Since the 14th century, the intellectuals have proved that Joseon had long been a civilized place by connecting the old legend of ‘Gija(箕子) enlightened Joseon’ with ‘Confucius wanted to come’. In 18th century Noron academia, there were another variations. Horon(湖論, a branch of Noron) built a theory of specializing Joseon. Emphasizing that Confucius’ coming to ‘east’, Han Wonjin argued that only Joseon could be a civilization, and that the barbarians of the north and west - implicitly Manchurians - could not be civilized at all. Nakron(洛論) were different. Seo Jonghwa argued that the distinction between the civilized and barbarian was meaningless in the sense of virtue. Hong Daeyong urged mutual recognition of the civilized and barbarian. Finally he linked ‘Confucius leaving for east’ with ‘Laotzu leaving for north and west’, emphasizing universal equality regardless of thought and re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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