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 지역 점토대토기 사회에 대한 다른 인식
An Alternative View on the Clay-band Rim Pottery Communities of the Central Part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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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지금까지 중부 지역 점토대토기 사회는 점토대토기 집단의 이주설과, 이를 전제로 한 이주민과 재지민의 공존과 갈등, 그리고 교류 및재편이라는 틀 속에서 설명되었다. 또한 외래 집단의 이주가 광역의 지역 통합과 본격적인 계급적 복합사회로 변화하는 등과 같은 문화변동의 원인이 되었다고 본다. 이 글은 이러한 인식의 논리 구조에 문제가없는지, 그리고 고고학 자료와 잘 부합되는 설명 틀인지 검토하고 그대안적 가설을 제안하기 위해 작성하였다. 점토대토기 집단의 이주설은 문헌의 역사 기록을 편년과 문화 해석의 전제 조건으로 하는 방법론과 특정의 유물복합체를 집단으로 이해하는 인식론이 결합되면서 주장된 것이지만, 실제 남한 지역의 인구 변동에는 확인되지 않은 실체이다. 또한 계통론적인 인식과 공존, 갈등설이 전제되어 점토대토기 유적편년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검증이 이루어진 사례는 없으며, 주거지의중복 및 유물의 공반 관계에서 편년 오류가 확인되기도 한다. 필자는 그 대안으로 관계망설을 제안하였는데, 청동기시대 중기 이래의 인구감소, 대형취락의 해체에 이어 취락의 분산, 소형화와 혼합경제로의 전환 과정에서 재지 집단이 사회 통합과 계층화를 위하여 전략적으로 관계망을 형성하였다는 견해이다. 즉 재지 집단이 요동, 서북 지역, 그리고 중서부 지역을 연결하는 광역의 관계망을 통해 점토대토기와 세형동검문화를 순차적으로 수용하였고, 제장과 같은 지역 관계망을 통해그 문화를 확산하였다고 본다.
Abstract
The clay-band rim pottery communities of the central region of Korea have been understood thus far from the point of view of migration, of coexistence and conflict between migrants and indigenous peoples, and in terms of exchange and reorganization. In addition, the migration of foreign residents has been regarded as a cause of cultural change, bringing about the regional integration of the wider area and transformation into a fully class-divided society.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whether there are any problems with the logical structure of such a perception, and to consider whether it is a descriptive frame that is consistent with archaeological data, and to suggest alternative interpretations if required. The migration theory for the clay-band rim pottery group, which was developed by combining the methodology of making historical records as a prerequisite for annals and cultural interpretation with the epistemology of regarding a specific archaeological assemblage as a representing a population group, is an unconfirmed entity. Also, the dating of the clay-band rim pottery sites has been based on the theory of systematic awareness, coexistence, and conflict. However, no verification has taken place and occasionally errors of chronology have been identified in relation to the overlapping of dwellings and the relationship of artifacts. Therefore, relationship network theory is presented as the basis for an alternative interpretation. It is proposed that the indigenous group formed strategic networks for social integration and stratification in the process of transformation which involved the dissolution of large villages, their dispersion and the miniaturization, and the emergence of a mixed economy, which had taken place since the middle of the Bronze Age. In other words, it is argued that the indigenous group gradually accepted clay-band rim pottery and the Slender Bronze Dagger culture through a wide regional network that connected the Liaodong region, the northwestern areas of the Korean Peninsula, and the mid-western areas of the Korean Peninsula, and that the culture had spread through the regional network via nodes such as ritual si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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