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이후 봉산탈춤의 변화양상

A study on the change and aspect of Bongsan masked drama after its designation as an Important Intangible Cultural Properties

0

조회

0

다운로드

5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봉산탈춤은 6.25 전쟁이후 남한에서 복원되어 전승되고 있으며, 196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된 후 한국을 대표하는 가면극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1977년 미국 주립대학 공연을 비롯해 현재까지 국내외에서 활발히 공연하고 있으며, 전수활동 또한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봉산탈춤에 대한 학술적인 조사는 1936년 양력 8월31일 경성중앙방송국(JODK)의 제2방송을 통해 전국에 생중계된 공연을 계기로 이루어졌으며, 현재까지 다방면에 걸쳐 연구되고 있다. 이로써 봉산탈춤은 과거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을 비교하며 살펴보기에 매우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봉산탈춤은 1936년 공연의 동영상과 사진을 통해 본 연희와 현재의 연희가 상당한 차이를 보일 뿐만 아니라, 1967년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이후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겪었다. 이는 봉산탈춤을 비롯한 대부분의 가면극들에 해당하는 현상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고찰은 한국가면극의 현재에 대한 점검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 전수활동을 펼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참고자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본고에서는 기존의 연구업적들을 참조하면서 봉산탈춤의 변화의 측면을 연희내용, 대사, 춤사위, 음악, 가면․의상․소도구 등으로 나누어 세밀한 부분까지 조사하여 논의를 진행했다. 이를 위해, 지난 수개월 동안 10여 차례 이상 봉산탈춤 전수교육조교를 비롯해 보존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면담조사를 실시했다. 이는 봉산탈춤의 전승양상 및 변화에 대해 최근에 이루어진 논의가 민속공연문화의 현장성에 기반하고 있지 않아 생긴 오해를 바로잡고, 연희자별 특장(特長) 등을 발굴하여 기존의 연구에 보탬이 되고자 함이다. 예전과 현재의 연희는 대체적으로 일치하는 면도 있지만 변화된 부분도 발견된다. 연희 내용에서는 미국 공연을 계기로 사자춤에서 사자가 서는 내용이 추가되었고, 현재와 같은 취돌이 가면이 생겼다. 남한에서 복원된 후에는 이두현본에 따라 덜머리의 대사를 하기도 했는데, 현재는 하지 않는다. 미얄할미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내용은 이두현본에 따라 두 가지로 연희하다가 현재는 영감이 미얄을 구타해 미얄이 죽음에 이르는 내용으로 하고 있다. 무당은 이두현본 이전의 대본에는 등장하지 않는 배역인데, 현재는 이두현본에 따라 무당이 출연한다. 대사에서는 예능보유자별로 특장이 있었는데, 실제로는 이러한 것들이 봉산탈춤 공연에서 전승되어왔다. 양소운 선생의 서도소리와 최경명 선생의 취발이 대사가 대표적이다. 대사의 변화는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는 대사 전달방식의 변화이고, 둘째는 대사 내용의 변화이다. 대사의 전달방식에서 옛 연희자들은 지문순서에 입각해 즉흥적으로 대사를 하기도 했고, 각 배역에 맞는 대사를 잘 구사했지만 요즘은 이러한 것이 잘 되지 않는다. 대사 내용의 변화는 다시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지정된 대본의 대사나 옛 연희자들이 하던 대사를 최대한 지키려 고수하면서도 새로운 시대에 맞게 대사를 쉽게 풀어서 바꾸어 하는 부분이 있고, 또는 현재 공연을 담당하고 있는 연희자가 나름의 논리적 기준에 맞게 대사를 변화시키는 부분이 있다. 봉산탈춤은 무형문화공연의 특성상 춤을 추는 연희자마다 춤사위의 예술적 효과가 다르게 나타난다. 춤사위를 어떤 연희자에게 배웠는가에 따라 춤사위의 예술적 효과가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춤사위는 장단의 변화에도 영향을 받는다. 먹중의 느린 춤사위에 타령시나위 장단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 그 예이다. 이외에 지금의 춤은 예전보다 빨라졌고, 예전 연희자들의 몸에 배인 멋진 춤사위를 구사하지 못하는 면이 있다. 지금과 같은 춤사위의 전수방식은 1981년 무렵부터 생겼다. 음악에서는 공연에 사용되었던 피리가락에 변화가 있었다. 황해도 피리가락과 경기도 피리가락의 사용이 그것이다. 또한 연희자마다 노래의 박자에 차이가 있었다. 가면․의상․소도구는 미국 공연 때부터 현재와 같이 정리되었다.

Abstract

Bongsan masked drama was restored at South Korea after Korean War. It was designated as a 17th Important Intangible Cultural Properties of South Korea in 1967. It became typical of Korean masked drama after its designation. Also it has been handed down very well. They do perform actively in internal and external including state university of U.S.A performing in 1977. A very first scientific investigation turned out with JODK2 program for Bongsan masked drama August, 31th, 1936. It is studied in conjunction with various academical field works up to now. With this, it is qualified for good chance to research. However, Bongsan masked drama has changed after its designation. And this phenomena is related on not only aim at designation but also performing of 1936. It is also applicable to bettermost of Korean masked drama. Basically, a study on the change and aspect of Bongsan masked drama is to be a typical of research for Korean masked drama. Compared with the contents of the previous play, there are changes in lion dance, Chwidori mask, lines of Deormeori, and grandma mayal's death. Previous performers have their own special feature on lines. They deliver it during play, and teach it to disciple. Yang-soun's Seodosori and Choi-geong-meong's Chwibari lines are an representative examples. The change of performers' lines is converted to that of delivering method and contents of their lines. In the past, performers delivered their lines with special accents and intonation. But these are not easy in nowadays. The movement of dance is related on performers' special feature. This is same as that of performers' lines. And dance is also affected with rhythm like Taryeong Sinawi. Comparing to previous dance, present dance is faster than previous one. The performers today can not express beautiful dance movements accustomed to their body as the performers did in the past. Guidance of dance was appeared in 1981. There changes also in music. Using Hwang-hae-do piligarak and gyeong-gi-do piligarak is an example. Mask, apparel, and stage props are settled into shape after state university of U.S.A performing in 1977.

참고문헌 (24)

  1. 국립문화재연구소, "의민 이두현 기증 사진집 5", ~
  2. 김일출, "황해도 탈놀이와 그 인민성, In 문화유산 1" (1957), 평양과학원출판사
  3. 김일출, "봉산탈놀이의 옛모습을 찾아서" (1957), 평양과학원출판사
  4. 김일출, "봉산탈놀이 대본, In 조선민속탈놀이연구" (1958), 평양과학원출판사
  5. 김호석, "봉산탈춤 음악본" (2006), 민속원
  6. 김호석, "황해도 탈춤음악의 전승과 선율구조", 한국음악사학보, (43), pp.79~126 (2009), 한국음악사학회
  7. 물질문화 유물보존회, "봉산탈춤 대본, In 조선의 민간오락" (1955), 평양국립출판사
  8. 박전열, "봉산탈춤" (2001), 화산문화
  9. 박진태, "탈놀이의 기원과 구조" (1990), 새문사
  10. 서연호, "봉산탈춤, In 황해도탈놀이" (1988), 열화당
  11. 서연호, "鳳山탈춤 吳晴採錄原本의 硏究", 민족문화연구, 36, pp.1~63 (2002), 민족문화연구원
  12. 송석하, "봉산가면극 각본", 문장, 2 (1940), 문장사
  13. 오청, "가면극 봉산탈 각본, In 최정여박사 회갑논문집" (1983), 계명대출판부
  14. 이두현, "한국가면극" (1969), 문화재관리국
  15. 이소라, "탈춤의 지역성 : 봉산탈춤의 <놀량> 연구", 공연문화연구, 7 (2003), 한국공연문화학회
  16. 이창배, "한국가창대계" (1976), 홍인문화사
  17. 임석재, "봉산탈춤대사", 국어국문학, 18 (1957), 국어국문학회
  18. 원혜진,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이후 양주별산대놀이의 변화양상", pp.2003
  19. 전경욱, "양주별산대놀이의 지속과 변화", 구비문학연구, (17), pp.227~284 (2003), 한국구비문학회
  20. 전경욱, "6.25전쟁 이후의 중·북부지역 가면극의 변화양상", 공연문화연구, (22), pp.5~43 (2011), 한국공연문화학회
  21. 전미경, "서도 선소리산타령 연구 : 놀량, 뒷산타령, 경발림을 중심으로", 석사, 음악학, pp.2009
  22. 정형호, "한국 전통연희의 전승과 미의식" (2008), 민속원
  23. 최창주, "한국전통연희의 이해와 실제 Ⅲ, 봉산탈춤" (2000), 한예종 전통예술원
  24. 최창주, "봉산탈춤극본연구" (2006), 엠-애드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8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