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정 이정직의 서예비평 연구 — 원교 이광사의 『원교진적』을 중심으로 —
A Research on the Calligraphic Critique of Seongjeok Jeong-Jik Lee - Based on ‘Wongyo-Jinjeok’ of Wongyo Gwang-Sa Lee
0
조회
0
다운로드
5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이 논문은 최근에 공개된 『원교진적』에 대한 소개와 서예비평적 고찰이다. 『원교진적』은 한말의 실학자이자 문인이었던 석정 이정직(1841-1910)이 원교 이광사(1705-1777)의 글씨에 대하여 비평해 놓은 것이다. 먼저 석정 이정직의 서예 활동과 함께 그의 글씨가 동국진체와 맺고 있는 관련성에 대하여 탐색해 보았다. 석정이 동국진체의 흐름에 서 있는 지에 대해서는 이 분야 전문가들의 몫으로 남아 있지만, 본고에서는 『원교진적(圓嶠眞跡)』과 『송하진적(松下眞跡)』, 그리고 『창암서첩(蒼巖書帖)』을 통해서 그가 동국진체를 접하고 있었고, 한편으로 그것의 영향권에 있었던 것으로 보았다. 이번에 공개된 『원교진적』은 원교가 부령으로 유배된 다음 해인 1756년 6월을 전후로 지었던 18수의 한시 작품을 초서로 쓴 필첩이다. 여기에는 원교가 함경도 부령에서 귀양살이를 하면서 그리움과 절망감으로 점철된 그의 내면이 담겨 있다. 『원교진적』은 석정이 원교의 글씨에 대하여 앞뒤로 비평적 제발을 덧붙인 자료라는 데에서 학술적 가치가 높다. 석정은 『원교진적』의 제발을 통해 서예사적 맥락을 염두에 두고 원교의 글씨에 대하여 비평을 하였다. 석정은 원교가 왕희지 이전의 글씨에 모범을 두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면서도, 석정은 원교가 우리나라의 풍기에 갇혀 조화(造化)하지 못한 한계를 보인다고 보았다. 석정의 이 언급은 원교의 글씨가 외면상으로 굳세지만 최고의 예술적 경지로서 ‘진숙’을 넘어서는 ‘조화’의 경지에 들어서지 못했다는 평가로 보인다. 그동안 연구자들은 석정의 서예 비평이 주로 중국 작가들에 대해서 이뤄졌던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석정이 직접 비평을 하였던 『송하진적』이나 『창암서첩『과 함께 이번에 『원교진적』이란 새로운 자료가 발굴되면서 그가 우리나라 동국진체의 작가들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Abstract
This thesis is an introduction and critique of the recently released ‘Wongyo-Jinjeok(원교진적)’. ‘Wongyo-Jinjeok’ is the critique of Seokjeong Jeong-Jik Lee (석정 이정직, 1841-1910), a practical scientist and writer during the last years of the Korean Empire, on the calligraphy of Wongyo(원교) Gwang-Sa Lee (이광사, 1705-1777). Even though whether or not Seokjeong follows the flow of Donggukjinche(동국진체) is to be determined by the specialists in this field, this thesis is based on the view that Seokjeong was influenced by Donggukjinche. The academic value of ‘Wongyo-Jinjeok’ is Seokjeong’s preface and epilogue which critiques Wongyo’s writing. ‘Wongyo-Jinjeok’is a collection of calligraphic specimens from the 18 pieces of Chinese poetry Wongyo had written before and after June 1756 which was the year after he was banished to Booryung. Seokjeong critiqued the writing of Wongyo from the perspective of calligraphic history in the preface and epilogue of ‘Wongyo-Jinjeok’. Seokjeong had been positive about Wongyo’s taking after the pre-Wangheejee calligraphic style. But at the same time, Seokjeong thought that Wongyo’s ability to create was limited by the public morals of that time. Such thought of Seokjeong can be interpreted as an evaluation of Wongyo’s calligraphy as having been externally stern but failing to transcend the realm of mastery to the realm of creation.
참고문헌 (19)
- 圓嶠眞跡, "燕石山房未定遺藁", ~
- "圓嶠集", 민족문화추진회, ~ (1999)
- 심경호, "新編 圓嶠 李匡師文集", 시간의 물레, ~ (2005)
- 구사회, "석정 이정직의 서화예술론 연구", 선무학술논집 (2005), 국제선무학회
- 구사회, "석정 이정직의 논서시와 문예론적 특질", 한문학보 (2005), 우리한문학회
- 김병기, "한국 서예의 독창성 탐색과 세계화 전략-전라북도 주관 '세계서예 전북 비엔날레'와 연계하여-", 대동한문학(大東漢文學), (22)통권 : 22, pp.233~310 (2005), 대동한문학회 (구.교남한문학회)
- 김진돈, "창암 이삼만 서예 연구", 석사, pp.1995
- 송하경, "서예미학과 신서예정신" (2003), 다운샘
- 유홍준, "조선중기 서예의 흐름?, 『조선중기의 서예』" (1990), 학고재
- 이동국, "‘동국진체’의 성격과 맥락연구에 대하여", 동국진체연구 (2007), 전주문화원 동국진체연구소
- 이동국, "석정 이정직 서예연구?, 『석정 이정직의 학문과 예술세계』", 국제어문학회 3월 학술대회 (2008), 국제어문학회
- 이완우, "조선중기 서예의 흐름?, 『조선중기 서예전』", 예술의 전당, ~ (1993)
- 이은혁, "석정 이정직과 19세기 전북서단?, 『성산문화』", 김제문화원, ~ (1999)
- 이은혁, "전북서예사?, 『석정 이정직』", 사단법인 한국서예문화연구회, ~ (2004)
- 임창순, "조선시대 초서의 흐름", 월간서예 (1993)
- 조희창, "원교 이광사의 학문과 예술", 동악한문학논집, 통권 : 8 (1996)
- 최완수, "추사서파고", 간송문화 (1980), 많국민족미술연구소
- 최완수, "조선후기 서예사의 재검토", 월간서예 (1990)
- 최완수, "그림과 글씨" (2000), 세종대왕기념사업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