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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末 東林學과 조선후기 유학의 반응

Doctrine of Donglin in late Ming Dynasty of China and its acceptance on the Confucianism in late Joseon Dynasty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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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사회에서 명말의 東林黨과 東林學은, 정치적 입장이나 학술 이론의 측면에서 그것과 친연성이 높은 노론 낙론계 학자들을 중심으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들에게서 동림당은 무엇보다 道學과 名節이라는 키워드로 포착되고, 동림학은 정치⋅도덕적 실천 문제와의 연관성 속에서 주목되는 경향이 있었다. 우리의 관심을 동림학에 집중해 보자면, 그것을 지배하고 있던 핵심적인 사상적 요소는 엄숙주의와 내면주의였음을 확인하게 된다. 엄숙주의는 정치와 학술을 도덕에 강력히 긴박시키고자 하는 태도로서, 양명학 비판이 그 하나의 귀결이었다. 내면주의는 인간의 내면적 가치에 몰입하는 경향성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주정적 공부론으로 구체화되었다. 동림학에 대한 낙론계 학자들의 반응에서는 내면주의를 둘러싸고 관점의 차이가 드러났다. 동림학에 긍정적이었던 임성주와 홍직필은 마음의 활력과 주재 능력을 중시하고 그 마음을 향해 내면으로 추구해 들어가는 경향을 보였다. 반면에 오희상을 중심으로 하는 동림학 비판론자들은 저들의 내면 지향이 간편한 것만을 추구하여 규범을 저버리게 된다고 우려하였다. 결국 이들의 논쟁은 정주학과 육왕학의 대립으로 잘 드러났던 주체와 규범의 갈등 문제가 조선후기 학술⋅사상사에서도 부분적으로 활성화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때 내면주의의 강화 경향을 육왕 심학으로의 경사로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Abstract

Donglin scholars in late Ming was famous for its Neo-Confucian Doctrine and the emphasis on the fidelity to its principle. When their works and achievements were introduced to Joseon in the 18th century, they created a great sensation among some scholars in Seoul. There were two different responses for Donglin’s political activities according to their own political positions on Tangpyeong policy of the present King, Yeongjo, at the time. That is, the pros of Tangpyeong policy criticized Donglin, while the cons admitted it. As for the academic assessment of Donglin, it was also divided by the positions on Wang Yangming’s doctrine. Most of the Joseon scholars criticized Donglin for its Yangming elements, while some tried to make use of it for the deeper understanding of human mind and heart. From this, we’ve found out that there was an gradual increase of introspectionism among some scholars in the academic world in late Joseon. However, it couldn’t be seen as a closer approach to “the philosophy of Wang Yangming” as some claim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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