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山 鄭元容의 文學論 고찰
Study on Literature theory of Gyeong-san(經山) Jeong Won-yong(鄭元容)
2
조회
0
다운로드
2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經山 鄭元容(1783-1873)은 1802년(순조 2)에 과거에 급제하여 약 70여 년간 관직생활을 역임하였다. 정원용은 뛰어난 행정능력으로 세도정치기의 상황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으며, 뛰어난 문장으로 당대의 여러 문인들에게 인정을 받았다. 정원용은 당대 정치와 학술 그리고 문예 방면에서 영향력이 있었고 방대한 저술들을 남겼지만, 그에 대한 연구 성과는 소략한 편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정원용의 문학 전반을 살펴보기 위한 기초 작업으로써 먼저 그의 文學論이 어떠하였는지를 고찰하였다. 정원용이 지니고 있었던 文學論을 고찰한 결과, 크게 세 가지 측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 정원용은 모방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있었다. 정원용은 문장을 지을 때 다른 사람의 작품과 구절을 모방하는 태도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대해 자신의 역량을 헤아리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古人을 따르려고 하는 태도에 반대하고 자신의 뜻을 드러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이유원은 정원용의 문장에 대해서 평가하며 자신만의 색채로 일가를 이루었다고 하였고, 정원용은 김조순의 시에 대해서 언급하며 그가 다른 사람의 작품과 구절을 베끼지 않고 스스로 일가를 이루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였다. 이를 통해서 정원용이 문장을 지을 때 모방하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째, 정원용은 시를 지을 때에 眞意를 추구하였다. 정원용은 荳溪 朴宗薰(1773-1841)에게 준 서찰에서 ‘공교롭기를 구하다가 도리어 眞意에 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謂不可求工而反害眞意也]’라고 하였는데, 이를 통해 정원용이 시를 수식하는 데에 뜻을 두고 이에 힘쓰기 보다는 情에서 발한 바를 꾸미지 않고 자연스럽게 시에 드러내는 것을 중시했음을 알 수 있다. 정원용은 시를 지을 때 다른 사람의 것을 베끼지 않고 자신의 뜻을 펼치고자 하였고, 또 뜻에서 발한 것을 억지로 꾸미고자 애쓰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것을 모방하고자 한다면 자신의 뜻을 담아내기보다는 겉을 꾸미는 데에 그치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가 모방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또 眞意를 추구했던 것은 서로 긴밀한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정원용은 기록을 중시하였다. 그는 지방관으로 부임할 당시 일어났던 사건들과 公文을 기록하고 부임지에서 지었던 詩文을 편찬하였으며, 우리나라 제도에 참고가 되는 典章制度를 집성한 책을 저술하고, 평생을 일기로 기록하는 등 다양한 방면에서 200여 편에 달하는 많은 저술들을 남겼다. 이러한 정원용의 기록정신은 그의 관직생활과 연관이 깊다고 할 수 있다. 정원용은 평생을 관직에 있었던 사람으로 자신의 경험이 나라를 경륜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목적에서 기록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록행위를 통해서 자신 또한 훗날 도움을 받고자 하였기에 방대한 기록물들을 남기게 된 것으로 보인다.
Abstract
Gyeong-san(經山) Jeong Won-yong(鄭元容, 1783~1873)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802(純祖 2), and he has been in office for about 70 years. Jeong Won-yong with excellent administrative ability, he was an important figure in the Sedo politics, and was recognized by many writers for his outstanding writings. Nevertheless, his research results are small. This paper studyed his literary theories as a preliminary to look at Jeong Won-yong's literature in general After examining the features of Jeong Won-yong, there were three main aspects. First, Jeong Won-yong had a negative view of imitation. In particular, he stressed that he should oppose the attitude of unconditionally following Go-in(古人) without considering his capabilities and express his intention. Second, Jeong Won-yong pursued Jin-ui(眞意) when he wrote a poem. He thought rather than think that it is important to decorate a poem, it is important that emotion is exposed to the poem in a natural way. And he tried to unfold his individuality in the poem without copying others. Because if he imitate someone else when he write a poem, it is hard to express his thinking. His negative view of imitation and he pursued Jin-ui(眞意) are closely related. Lastly, Jeong Won-yong considered records important. Jeong Won-yong's record spirit is deeply related to his government service life. Jeong Won-yong who had been in government service all his life, hoped his experience would help manage the country. That's why he thought records were very important. And through this recording behavior, he wanted to get help later on. So it seems that he left a vast works.
참고문헌 (19)
- 李裕元, "嘉梧藁略, 韓國文集叢刊, 315", ~
- 鄭元容, "經山集, 韓國文集叢刊 300", ~
- 洪敬謨, "冠巖全書, 韓國文集叢刊續集, 113", ~
- "규장각 한국학연구원"[URL]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URL]
- 안대회, "궁극의 시학" (2013), 문학동네
- 정옥자, "정조의 문예사상과 규장각" (2001), 효형출판
- 정요일, "古典批評 用語 硏究" (1998), 태학사
- 鄭元容, "袖香編 影印本" (1971), 同文社
- 정환국,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 고서해제 Ⅶ" (2007), 평민사
- 허경진, "정원용 관련 저술 해제집" (2009), 보고사
- 김우정, "경산(經山) 정원용(鄭元容)의 남성성(masculinity)", 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 (34), pp.269~296 (2017), 한국고전여성문학회[DOI]
- 김종진, "鄭元容의 『燕槎錄(詩)』 小考", 동양어문학, 42 (2004), 동양어문학회
- 김해인, "勢道政治期 관료 정원용(1783-1873)의 정치 활동", 석사, pp.2015
- 송호빈, "『袖香編』새 해제:著作 배경 고증 및 저작의식에 대한 재해석", 고전과 해석, 4 (2008), 고전문학한문학연구학회
- 이군선, "관암 홍경모의 중국문인과의 교유와 그 양상", 영남학, (33), pp.236~262 (2003), 퇴계연구소
- 최영화, "≪北行隨錄≫을 통해 본 鄭元容의 북방 인식", 동아인문학, (31), pp.245~275 (2015), 동아인문학회
- 허경진, "13종 저술을 통해본 관인 정원용의 기록태도", 동방학지, (146), pp.89~121 (2009), 국학연구원
- 허경진, "『燕槎錄』을 통해본 鄭元容과 淸朝 文士들의 문화교류", 동북아 문화연구, 1(19), pp.187~209 (2009), 동북아시아문화학회[DO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