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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독립촉성회국민회 지방 조직과 기독교

The Local Organization of the National Society for Acceleration of Korean Independence and Christia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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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정국에서 중앙에서 건국준비위원회가 조직되었다가 9월 6일에 인민민주주의공화국을 선포한 후에 지방에서 인민위원회가 조직되었다. 이러한 인민위원회가 1946년 전반기까지는 지방에서 우세한 위치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지방에서의 좌익의 우세를 역전시키기 시작한 것이 1946년 초부터 시작된 반탁운동이었다. 이러한 반탁운동의 과정에서 지방의 우익세력을 조직화한 전국적인 조직이 1946년 2월 8일에 조직된 독립촉성국민회였다. 독립촉성국민회는 중앙의 조직과 함께 지방의 도와 시와 군뿐만 아니라 면과 리에 이르기까지 전국적인 조직망을 확대해 나갔다. 이러한 전국적인 지방 조직이 갖추어질 때, 여러 지역에서 목사들과 기독교인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도의 경우에 충남의 남천우, 전북의 배은희, 충북의 구연직, 전남의 정순모, 이남규, 경북의 이영식 목사 등이 지부장 내지는 부지부장을 담당하여 9개 가운데 5지역을 차지하였다. 그리고 서울의 구나 지방의 군대표의 경우에도 상당 숫자가 기독교인들이었다. 서울의 8개 구 가운데 4개 구의 지부장이나 부지부장이 기독교인이었다. 경기도는 24개 군 가운데 6개 군, 강원도는 11개 군 가운데 4개 군, 충남 15개 군 가운데 2개 군, 충북 11개 군 가운데 2개 군, 전북 17개 군 가운데 5개 군, 전남 23개 군 가운데 6개 군, 경북 24개 군 가운데 5개 군의 지부장들이 기독교인들이었다. 그러므로 경남과 제주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기독교인들이 13-35%의 지부장들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당시에 기독교인들은 각 지역의 지부장들로 중요한 역할을 했고, 김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여러 교회들이 연합하여 독촉국민회 지부를 비롯한 여러 우익단체들에 참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해방 정국에서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정신을 바탕으로 우익세력의 중심이 되어 좌익을 극복하고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는 초석이 되었다.

Abstract

The People's Committees were organized in the provinces after the Preparatory Committee for Nation-building was established in the Southern Space of Liberation and the People's Democratic Republic was declared on September 6th. These People's Committees were in a predominant position in the provinces until June 1946. It was the Anti-trust movement that started in early 1946 that reversed the dominance of the left in theses regions. In the course of this campaign, the nationwide organization that organized the right-wing forces of the provinces was the National Society for Acceleration of Korean Independence organized on February 8, 1946. It expanded into its nationwide network including the local organizations of the cities and the counties. When these nationwide local organizations were established, Pastors and Christians played important roles in many areas. Most notably, Nam Chun Woo in Chungcheong Province, Bae Eun-hee in Jeonbuk Province, and Lee Young-shik in Gyeongbuk Province were responsible for the director or the vice-director. In the representatives of Gu of Seoul or counties of Province, a considerable number were Christians. Among the 8 Gu of Seoul, the chief of the branch office or the deputy director of the four Gu was Christian. 7 out of 24 counties in Gyeonggi Province, 4 out of 11 in Gangwon Province, 2 out of 15 in Chungnam, 2 out of 11 in Chungbuk, 5 out of 17 in Jeonbuk, 6 out of 23 in Jeonnam, 5 out of 24 in Gyeongbuk have the christian directors. Therefore, in the most of the regions except Jeju Do and Gyeongnam, christians accounted for 13-35% of branch manag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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