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해방정국에서 기독교의 정치참여: 독립촉성중앙협의회를 중심으로(1945.10.-1946.2.)

Korea Christianity’s Role in Politics-in the Early Liberation Period: With a Focus on the Independent Central Council(1945.10.-1946.2.)

0

조회

0

다운로드

4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주제분류기독교신학

초록

해방정국을 맞이한 기독교는 중앙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기독교인은 전체 인구대비 0.52%에 불과 했으나, 중앙정치 참여 비중은 매우 높았다. 정치참여 동기는 첫째 기독교 국가건설을 위하여, 둘째 증가하는 좌파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하여, 셋째 종교의 자유를 제공한 미군정의 한반도 정책에 협력하고 민의를 대변하기 위함이었다. 기독교는 기독교인 중심으로정치 단체를 조직하기도 했으나, 다른 정당과 통합하여 역량을 확장시키는데 초점을 두었다. 그 중에 가장 큰 단체가 독립촉성중앙협의회(독촉중협)였다. 독촉중협은 진정한 독립을 촉구하기 위하여, 같은 의미로 신탁을 반대하기 위해 세워진 정치단체다. 독촉중협의 중요 이슈는 미국과 소련 사이에 맺어진 신탁문제였다. 일본이 항복한 뒤, 소련은 38선 이북을 통치했고, 미국은 소련처럼 이남을 통치하였다. 1945년 12월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5년간의 신탁을 결의하자, 독촉중협과 대부분의 남한 사람들은 신탁을 반대하였다. 모스크바 회의 이전에는 공산주의와 소련에 예속된 좌파도 반탁을 지지했으나, 갑작스럽게 찬탁으로 돌아섰다. 그 이유는 소련의 정치적 입장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었다. 소련은 이미 38선 이북을 통제하고 있었고, 점차 남한으로 그 세력을 확장시키던 중이었다. 그러나 기독교인이면서 독촉중협 리더였던 이승만 독촉중협을 통하여소련과 좌파의 정치적 야망에 맞섰다. 남한의 공산주의자들은 독촉중협에 일본잔재 청산문제, 중앙실행위원 비율문제와 신탁문제를 해결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들은 독촉중협이 자신들의 요구를 거절하자, 독촉중협을 비난하고탈퇴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이탈한 진짜 이유는 소련의 입장 때문이었다. 좌파가 탈퇴함으로, 독촉중협은 우파의 특징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1946년 2월 8일 독촉중협은 김구의 임정과 연합하여 대한독립촉성국민회(독촉국민회)와 대한민국대표 민주의원을 배태시킴으로 미군정과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민의를 대변하였다. 우파성향을 가진 독촉국민회는 기독교를 부정했던 좌파에 대응하며 그 세력을 확대시켜 나갔다. 독촉중협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기독교는 좌파로부터 남한 사회와 기독교 신앙을지킬 수 있었다.

Abstract

During the postcolonial period of Korea, Christians actively participated in politics for national reconstruction. In 1945 Christians comprised 0.5% of the population, but their influence in politics was much higher. The purposes of their political participation were 1) to build up a Christian nation, 2) to prevent the spread of communism, 3) to take part in the US Army Military Government’s policy in Korea. At first Christians organized several political parties, which later coalesced with non-Christians to form a new political party with extended political leverage. The largest political group was the Independent Central Council(ICC). ICC’s purpose was to build up Korea’s de-facto Independence. Many people in political parties and groups participated in ICC. The ICCs’ main Issue was the problem of trusteeship rendered by the United States and the Soviet Union. After the Japan’s surrender, the Soviet Union established the northern region of the Korean Peninsula as a satellite state and the U.S. governed the southern region as the Soviet Union did. ICC and South Koreans, opposing the trusteeship, criticized communism and the Left which, under the Soviet Union, supported the trusteeship in Korea. The Soviet Union already governed north of the 38th parallel and launched an expansionist scheme toward the south. But the ICC’s Christian leader Lee Seung-man stood against its political aspiration. Communists in the south demanded to ICC the resolution of the three key issues: confiscation of Japanese’s property, organization off the central executive committee, and the problem of the trusteeship. As soon as ICC rejected their demands, they blamed its views and left out of it. This essay claims that a real cause of the communist secession from ICC related to the political stance of the Soviet Union. On Feb. 8. 1946, ICC united with Kim Koo’s Provisional Government and established the National Society for the Acceleration of Korean Independence(NSA KI). ICC had a conciliatory relationship with the US military government and represented the will of the people. Christians assumed the pivotal role in ICC and could keep the freedom of faith in the South Korea from the Left.

참고문헌 (66)

  1. "제1회 독립촉성중앙위원회 회의록 (1945.12.15.)", ~ (1945)
  2. "제1회 독립촉성중앙위원회 회의록 (1945.12.16.)", ~ (1945)
  3. "제2회 독립촉성중앙위원회 회의록 (1946.1.15.)", ~ (1946)
  4. "제3회 독립촉성중앙위원회 회의록 (1946.1.16.)", ~ (1946)
  5. "제4회 독립촉성중앙위원회 회의록 (1946.1.17.)", ~ (1946)
  6. "제5회 독립촉성중앙위원회 회의록 (1946.1.18.)", ~ (1946)
  7. "제2회 비상국민대회 집행위원회 (1946.1.19.)", ~ (1946)
  8. "제3회 비상국민대회 대표회 (1946.1.21.)", ~ (1946)
  9. "동아일보", ~
  10. "서울신문", ~
  11. "신조선보", ~
  12. "자유신문", ~
  13. "조선일보", ~
  14. 김국태, "미국무성 비밀외교문서. 해방3년과 미국 I: 미국의 대한정책 1945-1948" (1984), 돌베개
  15. 국토통일원, "美軍政 情報報告書. 제1권" (1989), 국토통일원
  16. 강인철, "해방 후 정치세력과 지배구조" (1995), 문학과 지성사
  17. 강인철, "한국기독교와 국가⋅시민사회; 1945-1960" (1996), 한국기독교역사
  18. 강인철, "남한사회와 월남기독교인", 역사와비평사, pp.74~130 (1995)
  19. 강인철, "미군정기의 인구이동과 정치변동", 한신논문집, 15, pp.545~607 (1998)
  20. 강인철, "월남 개신교⋅천주교의 뿌리", 역사비평, 17(여름), pp.91~141 (1992)
  21. 강인철, "해방 후 한국기독교인의 정치참여: 역사와 평가", 한국교수불자연합학회지, 15, pp.165~207 (2009)
  22. 기광서, "소련군의 북한 진주와 ‘부르주아민주주의 노선", 통일문제연구소, 20(1), pp.66~83 (2005)
  23. 김권정, "해방 후 기독교세력의 동향과 국가건설운동", 숭실사학, (29), pp.199~242 (2012), 숭실사학회
  24. 김 구, "强한 나라를 세우자", 활천, 229 (1946)
  25. 김규식, "自己를 征服하자", 활천, 229 (1946)
  26. 김상태, "근현대 평안도 출신 사회지도층 연구", 박사, 국사학, pp.2002
  27. 김양선, "한국기독교 해방 10년사" (1956), 대한예수교장로회 종교교육부
  28. 김흥수, "해방후 북한 교회사" (1992), 다산글방
  29. 남광규, "해방 초기 중간파 약화와 좌·우대결의 격화(1945.8-1946.2)", 박사, 정치외교학, pp.2002
  30. 남광규, "해방 직후(1945.09-11) 정당협력운동의 실패와 이승만, 박헌영의 임정 견제", 국제정치논총, 46(1), pp.145~164 (2006), 한국국제정치학회
  31. 민경배, "대한기독교장로회백년사" (1984),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교육국
  32. 박명수, "대한민국 건국, 기독교, 그리고 이승만", 성결교회와 신학, 20, pp.98~116 (2009)
  33. 박명수, "한경직 목사와 한국교회" (2015), 대한기독교서회
  34. 박명수, "대한미국 건국과 기독교" (2014), 북코리아
  35. 박명수, "조만식과 해방 후 한국 정치" (2015), 북코리아
  36. 박명수, "대한민국 건국과 기독교" (2014), 북코리아
  37. 송남헌, "解放三年史I" (1985), 까치
  38. 심지연, "韓國民主黨硏究I" (1982), 풀빛
  39. 안종철,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들의 활동과 한미관계 : 1931-1948", 박사, 국사학, pp.2008
  40. 안종철, "미군정 참여 미국선교사ㆍ관련 인사들의 활동과 대한민국 정부수립", 한국기독교와 역사, (30), pp.5~30 (2009), 한국기독교역사학회
  41. 영락교회, "영락교회 50년사" (1988), 영락교회
  42. 유동식, "한국감리교의 역사 II" (1994), 기독교대한감리회
  43. 이 건, "朝鮮의 解放과 基督信者의 覺醒", 활천, 229 (1946)
  44. 이승만, "하나이 되자", 활천, 229 (1946)
  45. 양동숙, "해방 후 독립촉성애국부인회의 조직과 활동 연구", 한국민족운동사연구, (62), pp.375~430 (2010), 한국민족운동사학회
  46. 양동안, "45-48년 기간에 있어서 이승만의 정치활동에 관한 연구", 정신문화연구, 25(3), pp.187~227 (2002), 한국학중앙연구원
  47. 윤덕영, "1946년 전반 한국민주당의 재편과 우익정당 통합운동", 사학연구, (121), pp.313~356 (2016), 한국사학회
  48. 연규홍, "해방 정국과 기독교 건국운동", 한국교회사학회지, (14), pp.95~119 (2004), 한국교회사학회
  49. 임경석, "조선공산당 창립대회 연구", 대동문화연구, (81), pp.347~376 (2013), 대동문화연구원
  50. 이덕주, "남부대회의 조직과 소멸", 한국기독교사연구회소식, 30, pp.23~27 (1990)
  51. 이상훈, "해방 후 대한독립촉성국민회의 국가건설운동", 學林, 30, pp.1~68 (2009)
  52. 장규식, "미군정하 흥사단 계열 지식인의 냉전 인식과 국가건설 구상", 한국사상사학, (38), pp.245~286 (2011), 한국사상사학회
  53. 정병준, "주한 미군정의 ‘임시한국행정부’ 수립 구상과 독립촉성중앙협의회", 역사와 현실, 19, pp.135~174 (1996)
  54. 진덕규, "해방 전후사의 인식" (1989), 한길사
  55. 최재건, "대한민국 건국과 기독교" (2014), 북코리아
  56. 한경직, "한경직목사 설교전집. 1권" (2009), 한경직목사기념사업회
  57. 한경직, "한경직목사 설교전집. 1권" (2009), 한경직목사기념사업회
  58. 한경직, "해방정국의 건국논쟁, 인민공화국인가? 민주공화국인가?", 성결교회와 신학, 33, pp.10~33 (2015)
  59. 한국기독교역사학회, "한국기독교와 역사 I" (1995),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60. 한국기독교역사학회, "한국기독교와 역사 III" (2009),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61. 허명섭, "대한민국 건국과 종교-종교세력의 건국운동을 중심으로", 성결교회와 신학, 33, pp.34~66 (2015)
  62. 허명섭, "해방 이후 한국기독교의 재형성: 1945-1960" (2009), 서울신학대학교
  63. Cumings, Bruce, "한국전쟁의 기원" (1986), 일월서각
  64. Lauterback, Richard E., "한국미군정사" (1948), 국제신문사
  65. MacArthur Douglas, "Reminiscences" (1964), McGraw Hill Book Co
  66. Oliver, Robert T., "Syngman Rhee; The Man Behind the Myth" (1955), Dodd Mead and Company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13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