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2년 皇帝御極 40년 望六旬 稱慶禮式과 皇都 정비 - 대한제국의 ‘皇都’ 구상에 담긴 만국공법적 제국과 동양적 제국의 이중 表象 -
The celebration of Emperor Kojong's 40th enthronement and 51th birthday and urban maintenance of Imperial Capital in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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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 전쟁 이후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세계질서, 즉 중화체제는 현실적으로 소멸했다. 그러나 현존 세계질서를 중심으로 구축되었던 中華意識까지 바로 소멸하지는 않았다. 갑오 개화파 정권은 만국공법적 세계질서 안에서만 大朝鮮國의 위상을 정립하려 했으나, 고종의 大韓帝國은 그럴 수 없었다. 개항 이후 고종 자신이 지속적으로 서구화 정책을 펴왔음에도 불구하고, 문명개화론에 일방적으로 경도된 개화 관료들은 그에게 적대적이었다. 본의야 어쨌든, 고종은 자신의 권력기반을 확대하기 위해 서구화에 반대하는 斥邪 유생들을 끌어안아야 했다. 그들 중에는 稱帝建元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조선 후기 이래 내용적으로 ‘조선중화주의’를 주창해 온 세력에게는 그 形式的 증거들을 갖춰 줄 필요가 있었다. 또 절대다수의 臣民에게도, 만국공법적 세계질서는 아주 낯설었다. 그들에게 帝國 臣民의 자존감을 심어주는 일은 갑오개혁과 아관파천으로 실추된 王權의 위상을 회복하고 皇權을 절대화하는 데에도 유용했다. 한편 청일전쟁과 아관파천을 거치면서 대한제국의 국제적 위상 역시 추락했다. 대한제국이 자력으로 독립을 유지할 수 있으리라고 판단한 열강은 없었다. 고종과 그 측근 세력 역시 이런 현실을 모르지 않았다. 그들은 군사력을 키우고 산업을 발전시켜 자주 독립의 내실을 갖추는 것이 궁극적인 위기 타개 방법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와 더불어 현존하는 公法的 세계 체제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것도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를 위해서는 서구적 기준에 합치하는 독립국이자 문명국이라는 증거들을 만들어야 했다. 그들은 서울 공간에 그 증거들을 집적해 두려 했고, 그것들을 고종 즉위 40년 망육순 칭경기념식을 계기로 국제 사회에 대대적으로 공개하려 했다. 대외적으로 공법이 공인하는 자주독립국이자 대내적으로 황제가 전체 신민 위에 군림하는 전제군주국을 표방한 대한제국에는, 이원적 필요에 상응하는 이원적 表象이 필요했다. 공법의 公認을 얻기 위해서는 서구적 근대 문명의 標識를 갖춰야 했고, 신민 일반의 동의를 얻기 위해서는 동양적, 전통적 帝國의 表象을 만들어내야 했다. 이 二元的 表象에 대한 권력의 요구는, 皇都 서울을 대내외적 表象의 중심 공간으로 개조하는 과정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칭경예식 전후 대한제국의 正宮 경운궁은 전통적 전각과 서양식 전각이 공존하는 독특한 궁궐이 되었으며, 상업 가로였던 종로는 帝王南面의 동양 전통적 도성 조영 원칙과 무관한 바로크적인 ‘장대한 직선 경관축’이 되었다. 이 도로 좌우에는 근대 문명을 상징하는 ‘서양식 건축물’과 동양적 帝國을 표상하는 ‘전통 양식’의 건조물들이 함께 들어섰다. 이 시기의 서울은 동양적 제국이자 만국공법적 제국이라는 대한제국의 二元的 位相을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공간이었다.
Abstract
After the First Sino~Japanese War, Sino~centric East Asian world order was practically destroyed. However, the Sinocentrism that was built around the existing world order did not immediately destroyed. Enlightenment group regime will establish the phase of the Great Joseon only in the system of the Elements of international law, but Emperor Kojong could not do that. After opening ports, King Kojong has adopted westernization policy continually, but the enlightenment group assumed hostile attitude against him. King Kojong has to embrace anti~western confucian group despite of his real thoughts. There are many opponents against the name of Imperial among them, but some of them who insist that Joseon~centrism could be supporters of King. And the world order which dominated by the system of the Elements of international laws was strange for the vast majority of people, too. It is useful for King Kojong that his people have pride of imperial ones, which would have supported to strengthen his sovereignty. After the Sino~Japanese war and King's escape to Russian Embassy, the international phase of the Great Joseon has fallen down too. The superpowers didn't think that Korea could maintain her independence by herself. Emperor Kojong and his aides have well known those situation. It was necessary for them that not only the power of military and industry, but also the symbols of civilization. They would make some evidences of civilization in the space of Seoul and open them to the public at the anniversary of Emperor Kojong's 40th enthronement and 51th birthday. The Great Han Empire had to make and possess dual symbols, one for her independence, the other for Emperor's autocracy. For the former, They were represented by western and eastern style buildings and constructs each. The needs of authority for dual symbols was realized on the space of Seoul capital, and then the dual structures and landscapes were formed in Seoul. Around the anniversary, many western style buildings were constructed in Kyeongwoon~gung, the main palace of the Great Han Empire and the eastward simple commercial street Jongno was changed to the main symbolic street. The western and eastern style buildings on the each side of this street which were constructed by the Emperor's authority, have represented that the dual phase of the Great Han Empire, not only the International one which was authorized by international standard, but also the traditional one which was authorized by Korean's traditional thou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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