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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창덕궁 大造殿 화재와 李王職의 역할

The fire of Changdeokgung Palace in 1917 and the role of Lee Househo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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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일제의 식민지 통치 아래에서 대한제국 황실은 明治 천황이 내린 병합 조서에 따라 李王家의 王公族이 되었으며 일본 황실 기구인 궁내성이 주관하는 기관이 되었다. 일본 제국주의 국가의 황실은 정부 내각과 군부도 거론하기 어려운 대상이었다. 궁내성이 이왕가와 연결되었다는 것은 총독부가 지배하던 식민지 조선에서 예외적인 계층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하였다. 물론 조선총독부는 이왕가의 예산과 인사 감독권을 합법적으로 가지고 있어서 견제가 가능하였다. 이왕가는 식민지 조선의 상징적인 지배층인 것은 물론 일본 황실의 일원이었다. 일본 황실의 상장례에서 이왕가를 대표하던 영친왕의 서차가 親王의 반열에 있었다. 총독부의 입장에서 이왕가와 갈등 관계로 있기보다는 협조를 유지하는 것이 식민지 통치에 유리하였다. 식민지 조선의 대표라고 하는 상징적 지위를 지니고 있던 이왕가를 예우하면서 그들의 조력을 바탕으로 지배를 하는 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이왕가와 그 관리 조직인 李王職의 존재는 일본 제국주의 정부가 대한제국 황실과 타협한 역사적 산물이라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이왕직은 일제강점기 동안 식민지 조선과 일본에 존재했던 관서이다. 이왕직 본청은 경성에 있었고, 전국 각지와 일본 내에는 왕공족을 지원하는 부처와 이왕가 관련 재산 등을 관리하던 기구 등이 부설되어 있었다. 이왕가는 대한제국기에 궁내부가 관리하고 거행하던 궁궐 내외의 의례적 활동을 지속하였으며, 이왕직은 그 역할을 담당한 조직이었다. 이런 배경에서 1917년 창덕궁 대조전 화재의 처리는 이왕직의 기능과 역할을 조명할 수 있는 사례이다. 이왕직이 고종의 거처인 덕수궁과 순종의 거처인 창덕궁 등을 관리한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창덕궁은 일제에 의해 순종이 억압되고 유폐되던 공간이 아니라 조선 왕조 개국 이래의 왕실 의례와 문화가 지속되던 공간이었다. 따라서 창덕궁의 관리를 담당하던 이왕직의 직무와 활동을 조명하면 식민지기 이왕가에 대한 일본 황실과 총독부의 정책 및 의중을 파악할 수 있다.

Abstract

The Changdeokgung Palace fire was a matter not only of the lee household but also of the Governor's Office. A sensitive case that could create a controversial public opinion of the Korean colony that neglects the security of the Korean royal family and ignore the courtesy of the royal prince who is a member of the Japanese royal family may occur. It is possible to confirm the appearance of attempting to handle the Lee royal family from the fact that the government general secretary of the Governor's Office commanded on-site to suppress the fire and mobilized the Japanese army. Of course, it can also be interpreted as a political intent to seek the euphoria of their masses. From the perspective of a Lee household, it is evaluated that its function and role were strengthened, not through the fire. It was also a way to increase the status of the organization and external public confidence by Lee households who made reports by receiving statements from related persons who worked on the day of the fire to reveal the truth of the accident. Lee households reported the activities of members in the field, including checking for mistakes that could lead to fire in situations that could have been subject to fire investigations, and reporting them to the court. Through this, it is thought that the Lee household was created as an opportunity to establish a status as a representative organization of the royal family of the Joseon Dynasty, rather than being controlled under the colonial governance body including the governor general in colonial Cho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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