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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릉 수호사찰 奉獻寺 건립과 폐사

The construction and closure of Heonneung's guardian temple, Bongheon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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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대모산 자락 수서동 540번지 일대 택지개발 발굴보고서(2015)에 의하면, 1구역 9개 건물지가 헌릉 능침사였던 봉헌사지이며, 세종 8년 이후 어느 시기에 설립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헌릉을 조성할 당시 태종의 명으로 능침사를 두지 않았고, 이는 세종의 영릉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렇듯 한동안 능침사 설립이 이루어지지 않다가, 세조가 말년에 대모산 자락의 헌릉과 영릉에 능침사 건립을 시도한 적이 있다. 하지만 홍수로 건립을 중단한 채 세조가 승하함으로써, 그리고 예종이 즉위하여 영릉을 여주로 천장한 후 성종이 신륵사를 능침사로 중창하면서, 헌릉 능침사는 더 이상 논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헌릉 능침사 구실을 대신 한 곳이 양주 회암사였는데, 원경왕후와 회암사는 매우 밀접한 인연을 가진 절이었고, 또 당시 왕실의 모든 기신재를 직접 관장하는 곳이란 점이 작용한 듯하다. 그리하여 문정왕후가 회암사를 두고 헌릉 능침사로까지 표현하기도 했는데, 실상은 능침사 구실을 대행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명종 20년경부터 회암사가 폐허가 되고, 그로부터 약 30여년 후에 새로 중건되기 시작했는데, 그 공백기에 봉헌사가 설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조선의 왕릉수호사찰은 더 이상의 능침사가 아니라 조포사라는 형태로 변모해갔다. 追薦齋 기능이 사라진 상황에서, 이제는 조포승을 두어 능침에 두부를 제공하는 것이 큰 기능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봉헌사와 관련된 조선 후기 문헌 자료 모두 조포사 역할만 명기한 것도 이와 관련되어 있다. 헌릉 조포사 기능을 수행하던 봉헌사는 18세기에 쇠락의 길로 접어들어, 중엽 이후에는 용인 봉서사에 그 기능을 넘겨주었으니, 약 120~130년도 존속하지 못한 헌릉 수호사찰이었다.

Abstract

Nine building sites in District 1 are Bongheonsa(奉獻寺) Site, which used to be Heonneung(獻陵) Neungchimsa(陵寢寺), according to the 2015 Housing Site Development Excavation Report at 540 Suseo-dong at the foot of Daemosan Mountain(大母山). It is estimated that it was established sometime after King Sejong's 8th year. When Heonneung was created, however, Neungchimsa was not placed under King Taejong's orders, which had an impact on King Sejong's Yeongneung(英陵). As a result, Neungchimsa hasn't been built in a long time, but in his later years, King Sejo endeavored to construct Neungchimsa Temple in Heonneung and Yeongneung Royal Tombs at the foot of Daemosan Mountain. Heonneung Neungchimsa was no longer a topic of contention after King Sejo died after pausing work due to a flood, and King Yejong moved Yeongneung to Yeoju and King Seongjong renovated Silleuksa(新勒寺) as Neungchimsa. Meanwhile, Queen Wongyeong(元敬王后) and Hoeamsa(檜巖寺) in Yangju took over the job of Heonneung Neungchimsa, and Queen Wongyeong and Hoeamsa Temple were very close, and it appears to have worked because they were in charge of all the royal gishinjae(忌晨齋) at the time. As a result, Queen Munjeong(文定王后) referred to Hoeamsa Temple as Heonneung Neungchimsa, despite the fact that it was just functioning as a representative for Neungchimsa. Then, around the 20th year of King Myeongjong's reign, Hoeamsa fell into disrepair, and it was repaired around 30 years later, during which time it is thought that Bongheonsa was founded. Since then, Joseon's royal tomb guardian temple has been renamed Joposa(造泡寺), rather than Neungchimsa. This is because, now that the role has been removed, providing tofu to the nunchim by placing the Jopo seung(造泡僧) has become a major function. This is also related to the fact that in the late Joseon Dynasty, all literature sources about Bongheonsa Temple only indicated the role of Joposa. Bongheonsa formerly Heonneung Joposa, began to decline in the 18th century and gave over its function to Yongin Bongseosa by the middle of the century, making it a Heonneung guardian temple that lasted just about 120~130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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