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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上錄』과 『丁酉避亂記』硏究 -일본풍물 및 일본인 인식과 선비精神 중심으로-

Study of “Haesangrok” and “Jeongyupiran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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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고는, 儒者 月峯 鄭希得이 정유재란 때 왜군의 포로가 되어 일본의 被虜 생활 중 스스로 경험한 것을 기록한 『海上錄』와 族姪인 유자 隱窩 鄭好仁이 동일한 사건을 필사한 『丁酉避亂記』에 관한 연구인 것이다. 월봉의 『해상록』과 은와의 『정유피란기』는, 선조 30년에 피난하다 왜군에 포로가 된 해(1597)로부터 일본에서 還國하던 해(1599)까지 대강을 적은 일기와 시문집으로, 사료적 중요성뿐 아니라 문학적 가치가 있는 문헌이다. 본고에서 필자는 『해상록』과 『정유피란기』에 나타난 피로인이 경험한 일본의 풍물과 일본인에 대한 인식아파주 일본인과의 교유 목적 그리고 儒者가 지녔던 정신 등의 내용을 고찰하였다. 그 결과 피로인이었기에 일본의 통신사나 수신사가 쓴 사행록과는 차이가 있었다. 피로인 유자들은 조선 중기 유자들이 지녔던 소중화주의적 사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고 왜국에 대한 적대적인 시각으로 그들의 문화를 바라보았다. 또한 정희득과 정호인은 왜국에서 일본인과의 교유 방법이 서로 달랐다. 정희득은 환국의 목적으로 그들과 시문을 수창하였지만, 정호인은 그들이 요구한 한시 창작의 요구를 일절 거절하면서 환국의 날을 기다렸다. 이와 같이 이들이 일본인과의 교유 방법은 달라지만, 그 목적은 환국이라는 동일한 것이었다. 이들이 결과적으로 환국할 수 있었던 정신은 충절은 저버리지 않는 선비精神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들이 남긴 한시에는 소무고사와 향수를 통해 변함없는 충절을 보여준 선비정신이 반영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海上錄』과 『丁酉避亂記』를 대비한 결과 『丁酉避亂記』가 초간본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Abstract

This study is about “Haesangrok,” which Wolbong Jeong Hee Deuk, a Confucian scholar, wrote based on his experience when he was captured in Japan as a war captive at the time of the two invasions of Japan from 1592 to 1598, and “Jeongyupirangi,” which his relative, Eunwa Jeong Ho In, another Confucian scholar, wrote about the same event. Wolbong's “Haesangrok” and Eunwa's “Jeongyupirangi” are a journal and a poetry about one's life story from the year when he became a war captive in Japan in the 30th year of King Seonjo (1597) until the year he came back from Jana in the 32nd year of King Seonjo (1599). They are not only remarkable historical resources, but they are also invaluable pieces of literature. “Haesangrok” and “Jeongyupirangi” writes about Japanese culture, people, interaction with the people of Apa, and spirit of Yuja. Because the author of “Haesangrok” was a war captive, his book was different from any other book written by envoys or diplomats to Japan. He still had the pro-China ideas of Confucian scholars in the mid-Joseon Dynasty and was antagonistic to Japanese culture, which they thought was inferior to theirs. However, Jeong Hee Deuk and Jeong Ho In had different ways of interaction with Japanese people. Jeong Hee Deuk wrote poetry for them to return to Joseon, but Jeong Ho In rejected their request to write poetry for them as he waited to return to Joseon. The way how they interacted with Japan was different, but they had a common purpose to return to Joseon. They were able to return in the end because they were both faithful scholars. The Korean poetry they left mirror their unwavering spirit and faith. Also, in result of comparing “Haesangrok” and “Jeongyupirangi,” it was found that “Jeongyupirangi” is first e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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