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泉男産墓誌」의 역주와 찬술 전거에 대한 고찰
Translation and Annotations of Cheon Namsan’s Epitaph(泉「男産墓誌」), and a Study on the Original Source of Wri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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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泉南産墓誌」가 발견되고, 1920년대부터 지문에 대한 검토가 이어져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판독과해석상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이 남아 있었다. 이에 이 글에서는 탁본 자료와 기존 판독을 비교검토하여 새로운 판독을 제시하였고, 종래에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일부 구절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였다. 아울러 지문 가운데 고구려 관련 내용의 전거를 밝혀보고자 하였다. 지문에서 확인되는 고구려 건국설화와 관제에 대한 서술은 『後漢書』와 『周書』 등 중국사서의 기록을 바탕으로 작성된 것이었다. 이러한 서술상의 특징에서 짐작컨대 지문의 撰者는 史官의 직임을 맡고있었던 唐人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검토는 고구려 유민의 묘지를 사료로서 활용하는데 있어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묘지 자료가 묘주 혹은 묘주 가문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기초 자료임은 분명하지만, 지문에서의 고구려 관련 서술이 묘주의 가문, 혹은 고구려인들의 이해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닐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Abstract
After Cheon Namsan’s Epitaph(「泉男産墓誌」) discovered, there were many reviews of the contents. But still remains problems of character reading and translation to be solved. So this study reviews the rubbing(拓本) and the existing character readings, provides a new character reading. And provides the translation and annotations of the entire contents. In addition, investigated the original source of Koguryo-related content of this epitaph. The contents of the epitaph on the founding story and the bureaucracy was written base on Houhan-shu(『後漢書』) and Zhou-shu(『周書』). Considering these characteristics, the writer of this epitaph was probably the Tang person(唐人) who was a history recorder(史官). The results of this study provide valuable information to those who want to take the epitaph of displaced people of Koguryo to the source of historical knowledge. Because any contents of the epitaph of displaced people of Koguryo is not a understanding of Koguryo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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