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세기 고구려 정치체제
The Political System of Goguryo(高句麗) at 4-5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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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머리말현재 한국학계에서는 고구려라는 1,300여 년 전의 고대 국가의 성격을 막연히 왕을 정점으로 통합된 국가, 나아가서는 근·현대적인 민족국가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즉 4∼5세기 고구려에서는 이미 中央集權的인 專制王權이 확립되었고, 정복전쟁을 통해 대외로 팽창하여 ‘帝國’을 형성하였다고 간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南進政策’이라는 표현도 바로 그 중 하나이다.攀* 인하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평양천도를 전후한 시기, 고구려의 대외 팽창 방향에 관해 ‘南進論’이 제기 되어왔다. (박성봉, 「광개토호태왕기 고구려 남진의 성격」,『한국사연구』27, 한국사연구회, 1979.)攀攀 고구려의 ‘남진’에 대해 두 가지 시각이 있다. 그 중 하나는 4∼5세기 고구려의 발전방향이 기본적으로는 대륙방면이었으나, 서쪽진출을 위한 보조 수단으로 남쪽을 경략하였다는 주장이다.攀 이병도, 「廣開土王의 雄略」, 『한국고대사연구』, 박영사(서울), 1976.이용범, 「高句麗의 遼西進出企圖와 突厥」, 『사학연구』4, 한국사학회, 1959.천관우, 「廣開土王碑文再論」,『전해종박사화갑기념사학논총』,일조각(서울), 1979.攀攀 다른 하나는 고구려의 남진은 “우리 민족사의 기본 흐름이 新石器時代이래 북방에서 남방 즉 韓半島로의 이동이었고, 고구려의 성립으로 비로소 민족 이동이 마무리되고 한반도를 차지하기 위한 분쟁이 본격화 된다”는 주장이다.攀 박성봉, 「韓國史上 南進·北進의 性格問題 - 高句麗의 南進發展史序說」, 『경희대학교논문집』9, 1979.攀攀이러한 두 가지 주장에서 모두 고구려라는 고대국가를 전제왕권을 정점으로 하여 대외로 팽창해나가는 하나의 帝國的인 통일체로 보고 있는데, 이러한 시각 자체가 문제될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다시 말해서, 고대국가의 실체 즉 그 정치체제에 대한 자세한 파악이 선행되지 않은 채, 단순히 기존의 연구 성과를 그대로 수용하여 4∼5세기 고구려를 중앙집권적인 전제 왕조로 파악하거나, 지나치게 국수주의적인 경우, 근·현대적인 민족국가와 동일시하는 접근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국가발전단계에 관한 사회인류학 이론의 틀에 적용시켰을 때, 이러한 이해가 과연 얼마나 타당할지 의문이다.본고에서는 과연 고구려의 ‘남진’이 중앙집권체제였던 고구려의 擧國的인 戰略의 일환이었을까? 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4∼5세기의 고구려의 정치체제와 그 속에서 고구려 王의 지위, 나아가 고구려의 樂浪 정복, 對 百濟 전쟁 등 ‘남진’의 실체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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