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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9세기 조선유학자의 정원 조영과 성격

A Study on Joseon Confucian Scholars’ Garden Making and the Characteristics of the Gardens in the 18th, 19th Centu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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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글은 18~19세기 조선 유학자들의 이상적인 정원 조성의 변화와 그 성격을 살펴보았다. 특히 영남 남인으로 경상도 지역에서 정원을 조성했던 이만부(李萬敷)와 경화사족으로 실학자의 면모를 보였던 서유구(徐有榘)의 정원관(庭園觀-그가 구상한 정원의 모습)을 중심으로 그 공통점과 차이점을 대비하여 살폈다. 그 결과 얻어진 결론은 다음과 같다. 이들은 모두 정원이 서재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정원을 조성하면서도, 유학자로서 삶의 자세와 태도가 드러나는데 중점을 두었다. 18세기 전반 영남남인 이만부는 그의 거주지와 정원을 조영하는 데도 주자학자로서의 성격을 많이 드러내고 있었다. 그는 만년의 여생을 보낼 주거지로 도회지에서 멀리 떨어진 산수가 아름다운 한적한 곳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곳의 자연환경과 자신이 구축한 건축물에 이름붙이기를 통해 은자로서의 삶과 주자학에 철저한 삶을 담았다. 그가 자신의 신념이자 사상을 바위와 샘 같은 자연경관과 자신이 지은 건물의 이름에 붙이고, 그곳을 거닐며 세상을 관조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곳에서 반드시 단아한 태도로 엄숙한 삶을 유지하였다. 아름다운 연못, 꽃, 나무를 소요할 때에도 반드시 차례가 있을 정도였고, 일상생활이 모두 성리학적 실천이었다. 반면 경향분기가 심해진 18세기말 이후 서울과 근기에 근거지를 둔 유학자들은 반드시 도성에서 멀리 떨어진 곳을 주거지로 선택하지 않았다. 도시로의 거주가 불가피한 현실이 되면서, 주거지를 선택하는 기준도 실용적인 면이 우선시되었다. 도시의 문화 생활과 관직을 포기할 수 없는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 거주지의 선택 기준도 실용적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이러한 실용적인 태도는 그들의 서재 구성이나 연못에 대한 사고방식의 변화에서도 드러난다. 주자학 일변도의 독서나 연못의 주자학적 상징에 집착하기 보다는, 다양한 분야의 독서를 강조하고 연못이 지닌 실용성을 주목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정원에 이름붙이기에 있어서도, 벼슬살이와 은거를 적절히 조화할 수 있는 이중적인 의미를 갖도록 이름붙이기 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또 정원수와 화훼의 식재에 있어서도 18세기 후반에는 다양한 종류의 화분과 분재가 유행하는 등, 19세기 서울만의 독특한 문화를 반영하는 모습을 이들은 보이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조선후기 유학자의 정원은 매우 사상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공간이었으며, 주자학에 대한 자세의 차이가 정원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Abstract

This study examined Joseon Confucian scholars’ making of ideal gardens and the characteristics of the gardens in the 18th‐19th centuries. Specifically it analyzed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between Man-boo Lee(李萬敷) who, as a member of the Yeongnam Namin sect, created gardens in the Gyeongsang‐do area and Yu-goo Seo (徐有榘) who was from a rich noble family in Seoul and inclined to Shilhak(Practical Learning). The study focused on their view of garden(庭園觀–the appearance of gardens designed by them). From the results of this study were drawn conclusions as follows. Both of them believed that a garden was an extension of study. Therefore they tried to reflect their life attitudes as Confucian scholars in creating a garden. The tendency was expressed clearly in the creation of a pond, planting of vegetation, or the naming of surrounding natural objects. Another commonality was that they were strongly conscious of their role as Confucian scholars. In building their dwelling place, they included spaces for educating young people, medical facilities for sick neighbors, and storehouses for the relief of the poor. On the other hand, Man-boo Lee and Yu-goo Seo reflected differences in the area and time of their activities. Man-boo Lee who lived the early 18th century and belonged to the Yeongnam Namin sect expressed intensely his life attitude as a Neo‐Confucian in the process of garden making. He gave names with Neo‐ Confucian meanings to structures that he built or to natural objects in the surroundings. In contrast, Yu-goo Seo who lived the late 18th and early 19th centuries reflected the tendencies displayed by Seoul literati in those days. They tried to ornament their residential spaces luxuriously. The tendencies to plan spaces for various pastime activities and to accept thoughts other than Neo‐ Confucianism were revealed also in his gardens. Through the comparison of the two persons, we reconfirmed that the gardens in the late Joseon Dynasty had very philosophical characteristics distinguished from those in China and Japan. What is more, differences in garden composition were observed with the change in time and thou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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