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주의 파탄과 국민문학론
A broken intellectualism and 'national liter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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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최재서의 비평활동은 주지주의를 통해 현대가 상실한 전통을 회복하려는 모색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30년대의 모더니즘 문학이 보여주는 분열과 권태가 전통의 상실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했으며, 일단의 영미 비평가들이 보여주었던 지성주의와 과학주의를 통해 그것을 해명하려 했다. 김기림과 달리, 그의 모더니즘은 강력한 전통(도그마)의 확립을 통해 현대의 정신에 방향성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그러나 그는 식민지 조선에서 현대의 전통을 발견하지는 못했으며, 이러한 비관적 인식은 중일전쟁 이후 급속하게 일본의 국가주의에 포획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주지하듯이 중일전쟁 이후의 최재서 비평은 넓은 의미에서 친일문학의 범주에 포함되는 것이었는데, “조선인은 어떻게 일본인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요약되는 이 시기의 비평적 고민이 지성주의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30년대 후반에서 40년대 초반에 걸친 최재서의 비평은, 따라서 한 개인의 문제의식이라기보다는 식민지 조선의 모더니스트들이 공통적으로 직면하고 있었던 문제이기도 했다. 1940년대 초반 최재서는 《국민문학》을 창간․주재하면서 본격적인 친일문학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이 시기에 주창된 국민문학론은 일본의 내선일체 논리를 그대로 수용한 국책문학이 아니라, 제국-식민지라는 특수한 관계 하에서 조선문학의 특수성을 긍정하기 위한 지성주의의 산물이었다. 최재서가 44년까지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태평양전쟁의 발발과 징병제의 실시로 인해 그의 지성주의는 사실상 무력화되는데, 그것은 이 시기에 발표된 그의 평문들이 ‘피’, ‘신념’, ‘의지’, ‘결단’ 등과 같은 몰지성적 언표로 일관하고 있음에서도 확인된다. 1944년에 발표된 「받들어 모시는 문학」은 결국 지성주의에 의한 일본인 되기가 불가능함을 깨달은 최재서가 신념을 통해 그 불가능을 돌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40년대 초반의 국민문학론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인다. 그의 비평세계는 결국 천황제파시즘이라는 일본국가주의의 논리로 귀결되고 말았지만, 창씨개명 이전까지의 비평적 행보는 조선의 모더니스트들이 운명적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었던 사상의 변동과 굴절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준다.
Abstract
A broken intellectualism and 'national literature'Ko, Bong-JunThis study aims to demonstrate critical activities of Choi Jaeseo. He was influenced by the intellectualism and scientism of anglo-american critics, began criticism to restore the loss of spirit of the age. Unlike Kim Gilim, he accepted modernism to provide a way to the spirit of the age. He made great efforts to lay the foundation of modernism. However, he didn't find modern tradition of colony Jo-sun. In result, he was influenced by Japanese nationalism. Though he was apt to pro-Japanese after the Sino-Japanese War, he would not give up intellectualism. He made efforts to answer the question of how the Korean could be the Japanese. His critical reviews he wrote between the late 1930s' and the early 1940s' reflected not his own opinion but the concerns of the contemporary colonial modernists. After he published the first edition of <national literature> in 1941, he got down to pro-Japanese literature. But, his national literature did not totally accept colonialism. The opinion was his intellectual product to seek the characteristics of Korean literature. The Pacific War incapacitated him from seeking intellectualism. In those days, anti-intellectual words such as 'blood', 'belief', 'will', 'determination' appeared in his critiques. <Honoring the Literature>, one of the critiques of Choi, showed that it was impossible to be Japanese through intellectualism. As a natural consequence, his critiques were accepted by all of Japanese fascism.
참고문헌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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