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祖 御製 懸板을 통해 본 慶喜宮 殿閣의 建築工藝
Some Aspects of the Architecture and Craft of Kyonghee-Goong(慶喜宮) Palace through the Hanging boards(tablets) written by king Youngjo(英祖) of Josu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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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조선 왕조의 역대 왕이 지은 이른바 御製 御筆의 懸板 중에는 건축공예사적으로 의미 있거나 새로운 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있다. 특히 慶喜宮(慶德宮)에 소장된 英祖 御製 懸板 27점 중 9점은 특히 宮室의 建築과 工藝에 관한 자료가 있어서 이 방면 연구에 소중하다. 지금까지 懸板文을 역사학 또는 미술사의 자료로 활용한 예는 거의 全無한 것은 중요한 國學資料를 외면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논문은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자료를 史料로써 적극 활용하려는 취지에서 작성되었다. 경희궁 내 영조 어제 현판 9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우선 경희궁 내 여러 궁실전각들의 위치와 건축년대를 알 수 있다는 점이다. 경복궁과 마찬가지로 경희궁 역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폐허화 되었고, 일제강점기 때는 건축부재의 훼손도 있었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건축의 명칭만 전할뿐 자세한 연혁을 알 수 없는 전각들이 상당수인데 이 현판문들을 통해 어느 정도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다음으로 先代王인 肅宗과 景宗에 대한 추모의 글이다. 경희궁 德游堂과 그에 부속된 四勿軒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사물헌에 명칭의 典據와, 1730년(영조 6) 先王이자 영조의 형인 景宗의 비가 사물헌에 거처하였다는 말도 있어 경희궁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 끝으로 英祖 개인의 추억에 대한 회상의 글이 있다. 여기에는 장락전의 유래와 연혁에 대해 자세히 언급되어 있는데, 장락전 德游堂 북쪽에 休祥巖이라는 전망 좋은 바위가 있어서 肅宗이 어필로 ‘瑞巖’이라 써서 새기고 자주 이곳에 들렀음을 회상하고 있다. 영조 역시 특히 이곳에 자주 왔는데, 즉위한 뒤인 1730년(영조 6) 이후 1736년1740년1743년1747년까지 生母인 숙빈 최씨와 함께 왔으며, 1760년에는 자신의 혼례 뒤에도 이곳에 왔다고 한다. 또 이 영조 어제 현판에는 長樂殿光明殿德游堂集慶堂 등 경희궁에 관한 내용이 여느 현판보다도 비교적 많이 나와 있어 건축공예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장락전 이름은 영조가 직접 지었다고 나와 있다. 그리고 광명전에서는 1702년에 영조가 9세 때 嘉禮를 행하였고, 1718년(숙종 44) 경종의 혼례도 있었다고 적고 있다. 또한 德游堂에도 영조 자신이 1730년(영조 6)에 5개월 동안 거처한 바 있었다고 하였으니(德游堂 亦庚戌五朔 居廬之處也), 왕의 처소로서의 기능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集慶堂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영조는 景宗의 혼례 뒤 집경당에 가서 경종 내외에게 인사 드렸고, 경종과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가 病中에 이곳에서 療養하여 쾌차한 뒤 集慶堂으로 당호를 바꾸었다고 했다. 이렇게 영조 어제 현판에서 여러 중요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것 처럼, 차후 현판을 史料로써 적극 활용할 필요가 높은 것이다.
Abstract
There are many useful materials for the study of Architecture and Craft in the hanging boards written by several kings of Josun dynasty. Especially, nine hanging boards of twenty-seven written by king Youngjo are veru important materials for the way of studying on. There were Nobody attempt to use the hanging boards as the material for the study on Historics and Art-Historics except me, until now. I composited this paper mainly to enlighten the importance of hanging board. The facts we can catch with the hanging boars written by king Youngjo are like that : First, we can know the location and dating of those buildings in Kounghee-Goong Palace. Second, the memories of deceased kings are well explained on the hanging boards. Through these things we would know several facts about some aspects of Kyinghee-Goong Palace. As we saw, through those hanging boards written by king Youngjo, we could confirm some aspects of the Architecture and Craft on the Palaces of Josun Dynasty. Eventually, these hanging boards are very important because that contain mant informations about some points of those palace like Janglak-Jeon(長樂殿), Kwangmeong-Jeon(光明殿), Dukyou-Dang(德游堂), Jipkyung-Dang(集慶堂). Therefore, like the fact that we can know those important things through the hanging board written by the king Youngjo, we should take the hanging boards as the basic historical material, afterward.
참고문헌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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