九政洞 方形墳 年代 再考
Reconsideration on the Period of Square Tomb in Gujeong-d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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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통일신라 왕릉은 발굴조사 사례가 극히 드물기 때문에 호석 구조나 십이지신장상 도상, 능원 형식 등 외부적 속성을 중심으로 연대를 판단한다. 그러나 구정동 방형분은 발굴조사가 행해졌기 때문에 매장주체부 구조와 출토유물이라는 내부적 속성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고분의 연대에 관해서는 여타 왕릉에 비해 분석할 수 있는 자료가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8세기 후엽 인근과 9세기 중엽 또는 그 이후로 보는 두 가지 견해가 대립하고 있다. 또 이를 판단하는 방식은 대부분 여타 통일신라 왕릉을 분석하는 것과 같이 외부적 속성에 한정되어 있었다.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필자는 해당 고분의 내부적 속성과 외부적 속성을 함께 살펴 그 연대를 도출해보고자 하였다. 구정동 방형분의 내부적 속성으로는 매장주체부 구조, 안상문 상석, 당식 대장식구 교구의 세 요소를 살펴보았다. 분석 결과 구정동 방형분의 매장주체부 구조는 8세기 중엽부터 10세기경까지, 안상문 관대는 8세기 중엽부터 9세기 초까지, 당식 대장식구 교구는 7세기 중엽부터 9세기 초반까지로 판단된다. 또 선행연구에서 주요하게 다루어졌던 구정동 방형분의 외부적 속성도 재검토해 보았다. 분석 결과 호석 구조와 십이지신장상 도상 양자에서 모두 8세기 후엽 인근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따라서 내·외부적 속성 모두를 고려하였을 때 구정동 방형분의 연대는 8세기 후엽 인근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8세기 후엽에 조영되었다는 결과를 바탕으로 구정동 방형분의 피장자와 방형 평면 고분의 조영 배경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피장자의 비정에 앞서 이 고분이 명확한 왕릉으로 볼 수 있는가를 검토해 보았다. 그 결과 여타 왕릉과 비교하였을 때 왕릉급 고분임은 맞으나 왕릉으로 단정짓기는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으며 그 피장자 역시 보다 넓은 범위에서 찾아야 할 것으로 보았다. 이를 바탕으로 문헌기록을 검토해 보았을 때 구정동 방형분은 그 피장자가 왕이라면 경덕왕릉, 왕이 아니라면 원성왕대 태자릉으로 잠정 판단된다. 한편 방형 평면 고분의 조영 배경으로는 불탑을 충실히 모방하고자 한 결과로 추정하였는데 이는 피장자를 경덕왕 또는 원성왕대 태자로 보았을 때 그들의 성격 또는 당시의 국제적 상황과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Abstract
The royal tombs of Unified Silla have rarely been excavated. Building period is determined based on external attributes. However, Square tomb in Gujeong-dong was previously excavated, so information about internal attributes can be obtained. Nevertheless, there is controversy over the building period of this ancient tomb. One is a view that judge by the late of the 8th century and the other is a view that judge by the middle of the 9th century or later. n addition, most methods of judging this were limited to external attributes, such as analyzing the royal tombs of Unified Silla. In this regard, I wanted to examine the internal and external attributes of the tomb to determine its building period. As an internal attributes of Square tomb in Gujeong-dong, I analyzed internal structures and excavated artifacts. Their production period corresponds to approximately the late 8th century. And I also re-analyzed the external attributes of Square tomb in Gujeong-dong, which were addressed primarily in previous studies. They also have ample potential to judge from the late 8th century. Therefore, considering both internal and external attributes, the building period of Square tomb in Gujeong-dong is late in the 8th century. Lastly, I interpreted the meaning of Square tomb in Gujeong-dong based on the building period of this tomb. This is an interpretation of the person buried in this tomb and the background of building of square shape. First, it was concluded that although this tomb can be widely regarded as a royal tomb, it is ambiguous to see it as a complete royal tomb. This is reason of the person buried in this tomb is believed to have been the king of Silla, who had a special story, or a person who was not the king, but had considerable power. Based on this, I examined historical records. As a result, I assume that the person buried in Square tomb in Gujeong-dong is King Gyeongdeok(景德王) or the crown prince of King Wonseong(元聖王). About background of building of square shape, I presume as a result of trying to faithfully imitate the Buddhist pagoda. Considering these are the people buried in this tomb mentioned above, It is deeply related to their personalities or the international situation at that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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