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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武夷櫂歌」 수용양상과 陶山九曲詩의 성향

A Study on the Acceptance Patterns of "Muidoga" and the Tendencies of Dosangugok Poe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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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조선시대 「武夷櫂歌」 수용양상에 대해 다양한 논의를 한 기왕의 연구성과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독자적인 설을 제기한 것으로,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기왕의 연구에서 「무이도가」 수용관점을 入道次第⋅托興寓意⋅因物起興으로 분류하거나 因物起興⋅入道次第로 분류한 것은 층위가 맞지 않는 상관물을 비교 대상으로 삼아 설득력이 떨어지며, 분류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에 재고되어야 한다. 둘째, 조선시대 「무이도가」의 수용관점으로 언급한 설은 因物起興⋅托興寓意로 양분하는 것이 타당하다. 인물기흥으로 본 대표적인 인물은 奇大升이고, 탁흥우의로 본 대표적인 인물은 金麟厚⋅趙翼이다. 종래의 수사법으로 볼 때, 인물기흥은 興에 초점을 둔 것이고, 托興寓意는 比에 초점을 둔 것이다. 요컨대 「무이도가」 수용관점은 기본적으로 比로 볼 것인가, 興으로 볼 것인가에 있다. 입도차제를 주장한 사람들은 比로 본 것이고, 그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興으로 본 것이다. 셋째, 이황의 「무이도가」 수용관점은 기본적으로 인물기흥의 興으로 본 데에 있다. 다만 이황은 제9곡시에 대해서만 탁흥우의로 보아 比의 의미가 있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제9곡을 極處로 보지 않고 다시 妙處를 구하는 寓意가 있는 것으로 본 것이다. 이 점이 기대승과 의견을 달리 하여 논쟁한 부분이다. 그리고 이황의 이러한 견해에 대해 송시열⋅이익⋅조술도 등은 동의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황의 「무이도가」 수용관점을 전적으로 탁흥우의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또한 이를 두고 양자를 절충한 설로 보거나 진일보한 설로 보는 것도 실상과 부합되지 않는다. 넷째, 후대 창작된 도산구곡시에 이황의 관점이 어떻게 수용되고 있는가를 고찰한 결과, 그 성향이 다음과 같이 나타났다. 19세기 도산구곡시를 지은 18인의 18수 가운데 8인의 8수만이 이황이 妙處를 상정한 관점을 수용하고 있고, 그 나머지 10인의 10수는 제9곡을 極處로 보고 묘처를 구하지 않는 관점을 드러내고 있다. 도산구곡시를 지은 작가 가운데 절반 이상이 제9곡을 극처로 생각하는 인식을 드러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면, 이황이 제9곡시에 묘처를 상정한 것보다는 제9곡을 극처로 인식하는 시각이 퇴계학파 내에서도 보편적으로 수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Abstract

This study set out to critically review the accomplishments of the existing studies that offered a variety of discussions about the acceptance patterns of "Muidoga" during Joseon and set up an independent theory. The findings were summarized as follows:First, the existing studies classified the acceptance perspectives of "Muidoga" into Ipdojache⋅Takheunguui⋅Inmulgiheung and Inmulgiheung⋅Ipdojache, but the classification was characterized by ambiguous criteria and compared correlatives with wrong layers, thus losing its persuasive power and requiring reconsideration. Second, it seems valid that the acceptance perspectives of "Muidoga" during Joseon should be divided into Inmulgiheung and Takheunguui. The most representative figure that advocated Inmulgiheung was Gi Dae-seung, and his counterparts on the side of Takheunguui were Kim In-hu and Jo Ik. Considering the old rhetoric, Inmulgiheung and Takheunguui focused on Heung and Bi, respectively. In short, the acceptance perspectives of "Muidoga" were dependent on whether it was basically Bi or Heung. While the advocates of Ipdojache saw it as Bi, its opponents saw it as Heung. Third, Lee Hwang's acceptance perspective of "Muidoga" basically saw it as Heung as in Inmulgiheung, but he argued that only No. 9 Gok poem had the meanings of Bi as Takheunguui. He reckoned that No. 9 Gok contained Uui seeking after Myocheo again, not being Geukcheo, for which he voiced different opinions from Gi Dae-seung and had a dispute with him. His opinions, however, were not agreed on by Song Si-yeol, Lee Ik, and Jo Sul. Thus it is not right to say that Lee Hwang's acceptance perspective of "Muidoga" was solely in the line of Takheunguui. It is not true either that his theory was a compromise between the two or an advanced one from them. Finally, the study further examined how Lee Hwang's perspective was accepted in the Dosangugok poems created in later days and found the following tendencies: only eight of 18 Dosangugok poems created by 18 people in the 19th century accepted Lee Hwang's perspective of assuming Myocheo, whereas the remaining ten revealed a perspective of regarding No. 9 Gok as Geukcheo and not pursuing Myocheo. Given that more than a half of the Dosangugok poets exhibited a perception that No. 9 Gok was Geukcheo, it is apparent that the position of regarding No. 9 Gok as Geukcheo was universally accepted within the Toigye School rather than his assumption of Myocheo in No. 9 Gok poe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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