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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하 식민도시 개발과 조선인 자본가형성의 특징 - 전북지역 박기순ㆍ박영철 일가를 중심으로 -

Characteristics of Colonial Cities Development and Korean Capitalist Formation under Japanese Rule - Focusing on the Park Ki - sun and Park Yeong - cheol family in Jeonbuk Provi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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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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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한국 근대 자본주의의 식민지적 특징과 조선인 자본가의 복합적 성장 유형을 밝히기 위해, 대표적 조선인 자본가 박기순과 박영철을 중심으로 검토하였다. 특히 중앙 정치권력과 지역의 식민 도시 개발, 조선인 부르주아 형성을 상호 연관구조 속에서 파악하였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첫째, 한국 강제 병합 직후 죠슈벌 출신 총독들은 일본 국내 반대세력 무마를 위해 만경강 일대 호남평야의 미곡 수이출 교통체계를 만드는 작업이 급선무였다. 주요 시책은 이리 신도시 개발과 전북경편선(후에 전라선) 철도역 연변을 개발하는 작업이었다. 박기순은 이리-전주 일대에 광범위한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고, 실제 개발과정에서 박기순은 전북경편철도 기성회 회장을 맡고 익산군수 박영철, 전주면장 이성규가 역세권 개발에 앞장섰다. 그러므로 지역 개발이 조선인 자본가 박기순의 토지자본 축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을 기반으로 박기순은 지역유력자로 성장하게 되었다. 둘째, 전북에서 성장한 박기순ㆍ박영철 일가의 자본축적 유형은 총독라인에 밀착된 권력형, 지역형 자본축적 구조가 복합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특히 삼남은행의 최대주주와 최고경영자는 박기순이며, 장남 박영철을 비롯하여 그 일족들이 대주주가 되어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는 세습적 가족경영체제이었다. 셋째, 박영철이 중앙재계로 진출한 것은 도장관을 지낸 친일 관료라는 점과 부친 박기순의 축적된 토지자본과 금융자본 덕분이었다. 이를 기반으로 그는 총독부의 지방통폐합 정책에 힘입어 정권과 결탁하여 조선상업은행의 사장을 맡으면서 톱클래스로 급속하게 성장하였다. 그 대신 각종 정치 사회단체를 만들어 일제의 총동원체제를 지원하는 역할을 하였다. 요컨대 박기순․박영철은 일제의 식민도시 개발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대표적인 조선인 자본가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제국과 식민지라는 관계 속에서 2등 국민이라는 민족적 한계, 총독부의 금융 통폐합 정책에의 포섭 등으로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없었다. 일제의 패전으로 그들을 지탱하고 있던 총독부 권력이 사라지고 가족 내부문제 등으로 박 일가의 세력도 재력도 쇠퇴하게 되었다.

Abstract

This study was conducted to identify the colonial characteristics of Korea's modern capitalism and the type of comprehensive growth of Korean capitalists, focusing on the Park Ki-sun and Park Yeong-cheol, as Korean leading capitalists. In particular, the central political power, the development of regional colonial cities, and the formation of Korean bourgeoisie were reviewed centering on the correlation structure. The results of the review are as follows: First, directly after Japan's forced annexation of Korea, Governor-Generals of Chosen from Choshu clique were in urgent need of establishing a transportation system for the export and transportation of rice from the Mangyeonggang river plains, to appease Japanese domestic opposition forces. The main measures included the development of a new city of Iri and the areas along railroad stations on Jeonbuk-Kyeongpyeon Line(latter Jeolla Line). Park Ki-sun owned a big tract of land in Iri-Jeonju area and headed the preparatory association for Jeonbuk-Kyeongpyeon Line. Park Yeong-cheol, the magistrate of Iksan-gun, and Lee Seong-gyu, the head of Jeonju-myeon, took the lead in developing the sphere of influence of stations. This suggests that the regional development was closely related to the accumulation of land capital by Park Ki-sun, a Korean capitalist. Based on this, Park Ki-sun became an influential person in that region. Second, the Park Ki-sun and Park Yeong-cheol family showed a type of power-related and regional capital accumulation connected to Governor-Generals in that process. In particular, Park Ki-sun was the largest shareholder and chief executive officer of Samnam Bank, which lay under the hereditary family management system where his family including Park Yeong-cheol, as his eldest son, seized the managerial control as large shareholders. Third, Park Yeong-cheol entered the central financial world thanks to his experience of serving as a provincial governor and the financial capital and land capital accumulated by his father, Park Ki-sun. Based on this, Park Yeong-cheol rose rapidly to top class while he worked as the president of Chosen Commercial Bank through collusion with the regime, and played a role in organizing various types of sociopolitical groups and supporting Japan's general mobilization. In short, Park Ki-sun and Park Yeong-cheol grew rapidly to be Korean leading capitalists in the process of Japan's colonial urban development. However, they failed to grow into business magnates because of second-class colonial citizens' ethnic limitation, financial sector merger and abolition policy of the Japanese Colonial Government in Korea, and managerial limitations of capit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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