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모당(瞻慕堂) 임운(林芸)의 생애와 학술
Life and Learning of Chem-mo-dang Lim 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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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임운(林芸, 1517-1572)의 표질 이칭(李偁)은 선조 28년(1595, 을미)에 임운의 행장을 적어, 임운이 서울에서 역학을 논하자 기대승이 탄복한 일, 임운이 서울에서 퇴계 이황과 문난(問難)했을 뿐 아니라 퇴계가 도산(陶山)으로 퇴거하자 찾아가 뵙고 하룻밤 묵으면서 문답한 일, 임운이 백씨 임훈, 남명 조식, 옥계 노진(盧禛)과 함께 화림(花林)에 유람한 사실을 특별히 기록했다. 하지만 미수 허목(許穆, 1595- 1682)은 묘갈명을 지으면서, 임운과 기대승, 이황, 조식과의 관계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실제로 임운 자신이 남긴 시문에 나타난 학문 태도로 보면 반드시 퇴계와 남명의 맥을 이었다고 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임운은 퇴계와 남명의 학맥이 형성되기 이전에 주자학을 연찬하여 독자적인 학풍을 형성한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본고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임운의 생애를 살펴보고, 임운이 남긴 부(賦), 책(策), 논(論) 등을 중심으로 그의 학술에 관해 개괄했다. 임운이 호일계(胡一桂)의 『주역본의계몽익전(周易本義啓蒙翼傳)』을 독파하여, 주희 역학 가운데 상수학을 중시하고 복서에서 의리를 추론하는 방법을 수립하고자 한 것은 퇴계의 학맥을 직접 이은 것이라기보다는 독조(獨造)의 경지가 드러나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Abstract
.Yi Ching(李偁), son of a maternal cousin of Lim Un(林芸, 1517- 1572), introduces several episodes in the records of the life of Lim Un which imply the fact that he had a close relationship with those mentioned in each episodes; Gi Dae-seung(奇大升) met Lim in Seoul and was deeply impressed when Lim talked about I-ching; Lim asked Yi Hwang(李滉) some hard questions in Seoul, and later in Dosan(陶山) after Yi’s retirement; Lim went sightseeing to Hwarim(花林) with Lim Hun(林薰), Jo Sik(曺植) and No Jin(盧禛). However, Heo Mok(許穆, 1595-1682), the author of the epitaph of Lim Un, did not mention the relationship among them at all in his epitaph. It is commonly said that Lim succeeded the learning of Yi Hwang and Jo Sik. However, It is very doubtful that Lim succeeded the learning of both of them when his attitude of learning suggested in his literary works is considered. Rather, it seems to be appropriate to say that he established his own way of learning before the establishment of the school of Yi and Jo by studying Neo-Confucianism by himself. This article, with this viewpoint maintained, surveys his life and learning focused on his way of learning(爲學之道), his study of images and numbers(數學) and study of Tongjian(通鑑學) and his political theory, suggested in his literary works such as fu(賦), ce(策) and lun(論) wo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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