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白雲精舍에 투영된 공간인식 변모양상

Aspects of Changes in Space Awareness Projected onto Baegunjungsa

0

조회

0

다운로드

3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주제분류철학

초록

본고는 경남 산청군 단성면 白雲洞에 있었던 ‘白雲精舍’에 대한 역사적 흐름을 추적하여, 그 공간에 투영된 인식의 변모양상과 그 의의를 규명하기 위해 쓴 것이다. 백운동은 南冥 曺植(1501~1572)이 세 차례나 유람하며 은거하고자 했던 공간이었다. 이후 19세기 말, 지역 인근 유학자들은 남명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유행처럼 이곳을 찾았다. 白雲洞 三君子라고 불렸던 愚山 韓愉(1868~1911)‧澹山 河祐植(1875~ 1943)‧溪齋 鄭濟鎔(1865~1907) 역시 백운동을 찾아와 백운정사를 지으려 하였다. 이는 위태로운 나라의 상황 속에서 지역의 선현인 남명의 유적지를 찾아 백운정사를 지어 남명의 정신을 계승하고, 강학을 통해 유학의 도를 일으켜 세우려는 의지를 표출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뜻을 완전히 이루지는 못하였는데, 이후 한유의 후손과 간재학파 중심의 백운정사 유생들이 백운정사를 건립하였다. 백운정사 유생들이 백운정사를 건립한 까닭은 한유의 뜻을 계승하고 그를 추모하기 위해서였다. 이를 위해서는 당대 노론계 巨儒이자 한유의 마지막 스승이었던 田愚와 연결을 시켜야만 했고, 전우의 문인에게도 인정받는 것이 필요하였다. 예컨대, 전우에게 「白雲精舍銘」을 받고, 전우의 핵심 문인이었던 石農 吳震泳(1868~1944)과 欽齋 崔秉心(1874~ 1957)에게 백운정사에 관한 글을 받기도 하였다. 艮齋學派로부터 인정을 받게 된 백운정사는 강우지역 간재학파의 대표적 거점 공간이 되었다. 백운정사 유생들은 宋時烈이 짓고 전우가 글씨를 쓴 「남명신도비명」을 목판으로 찍어내기도 하고, 전우와 한유의 영정을 봉안하여 추모 공간을 만들기도 하였다. 이렇게 그간 남명과 큰 접점이 없던 간재학파가 백운동을 점유하게 된 것은 1926년 이후 남인 계열 학자들이 남명과 관련된 유적지에 관심을 끊었던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백운정사는 남명학 계승공간이라는 초기의 의도와는 달리, 艮齋學을 중심으로 유학의 도를 부지해나가고 선대와 스승을 추모하는 공간으로 변모하였다.

Abstract

This study tracked the history and records of Baegunjungsa(白雲精舍) located in Baegun-dong(白雲洞) in Danseong-myeon, Sancheong -gun, South Gyeongsang Province, and investigated the perception projected onto that space and the significance in the aspects of changes. Baegun-dong(白雲洞) is known as the area Nammyung Josik (南冥 曺植, 1501-1572) visited three times seeking solitude. In the late 19th century, seemingly as a trend, Confucian scholars nearby would seek the place to pay respect to Nammyung(南冥)’s spirit. Known as the three lords of Baegun-dong(白雲洞), Usan Hanyu (愚山 韓愉, 1868-1911), Damsan Ha Woosik (澹山 河祐植, 1875-1943), and Gyeje Jeong Jaeyoung (溪齋 鄭濟鎔, 1865-1907) visited Baegun-dong(白雲洞) with the intention of building the Baegunjungsa(白雲精舍). This was an expressed intention to not only continue the legacy of Nammyung(南冥)’s spirit by finding its ruins, a sacred area, and construct the academies, but also to raise the methods of Confucianism through lectures in an era filled with such confusion. Despite their will, the intentions were not fulfilled in their era, but the academies was completed by Hanyu(韓愉)’s descendants and the students of the school of Ganjae(艮齋). The motive behind building Baegunjungsa(白雲精舍) was to mourn and remember Hanyu(韓愉). For such purpose, the students had to connect with Hanyu(韓愉)’s last teacher, and be acknowledged by a writer of Jeonwu(田愚), a widely recognized scholar of the old doctrine. Specifically, they received “The Record of Baegunjungsa(白雲精舍)” from Jeonwu(田愚), and an article on the Academies from Suknog Oh Jingyoung (石農 吳震泳, 1868-1944) and Gimjae Choi Byungsim (欽齋 崔秉心, 1874-1957), the main writers of Jeonwu(田愚). These steps allowed Baegunjungsa(白雲精舍) Acad- emies to be validated by the Ganjae(艮齋) school of studies, leading to it becoming the representative base of their scholars of the Gangwu(江右) area. The scholars of Confucianism from Baegun- jungsa(白雲精舍) Academies carved wooden blocks to print the “Nammueongsindo Epitaph(南冥神道碑銘),” authored by Jeonwu (田愚) and written by Song Siyeol(宋時烈), and also created a space of remembrance by displaying portraits of Jeonwu and Hanyu(韓愉). This is how the Ganjae school(艮齋學派), which had minimum contact history with Nammyung(南冥), came to occupy the Academies; scholars of the Namin stopped showing interest in the historical sites of Nammyung(南冥) after 1926. Unlike its initial purpose to serve as a place to succeed Nammyung’s studies(南冥學), Baegunjungsa(白雲精舍) academies has become a place for Ganjae’s studies(艮齋學) to maintain Confucianism, and to remember their teachers and those before them.

참고문헌 (37)

  1. 金宇顒, "東岡集, 한국문집총간", ~
  2. 金麟燮, "端磎集", 경상국립대학교 고문헌도서관 소장본, ~
  3. 金鎭祜, "勿川集", 경상국립대학교 고문헌도서관 소장본, ~
  4. 宋時烈, "宋子大全, 한국문집총간", ~
  5. 田璣鎭, "飛泉集", 경상국립대학교 고문헌도서관 소장본, ~
  6. 田愚, "艮齋集, 한국문집총간", ~
  7. 鄭載圭, "老柏軒集, 한국문집총간", ~
  8. 鄭濟鎔, "溪齋集", 경상국립대학교 고문헌도서관 소장본, ~
  9. 曺植, "南冥集, 한국문집총간", ~
  10. 趙瀚奎, "惕菴集", 경상국립대학교 고문헌도서관 소장본, ~
  11. 7河達弘, "月村續集", 경상국립대학교 고문헌도서관 소장본, ~
  12. 河祐植, "澹山集", 경상국립대학교 고문헌도서관 소장본, ~
  13. 韓愉, "愚山集", 경상국립대학교 고문헌도서관 소장본, ~
  14. 黃炳中, "鼓巖集", 경상국립대학교 고문헌도서관 소장본, ~
  15. "晉陽續誌", 경상국립대학교 고문헌도서관 소장본, ~
  16. "華嶋淵源錄", 경상국립대학교 고문헌도서관 소장본, ~
  17. "南冥曺先生神道碑銘",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 ~
  18. "白雲精舍稧金錄", 상국립대학교 고문헌도서관 소장본, ~
  19. "白雲精舍稧案", 경상국립대학교 고문헌도서관 소장본, ~
  20. "白雲精舍雜錄", 경상국립대학교 고문헌도서관 소장본, ~
  21. "雲舍雜錄", 경상국립대학교 고문헌도서관 소장본, ~
  22. 강민구, "晉州本 『艮齋集』 간행과 門人의 갈등", 동방한문학, (91), pp.35~74 (2022), 동방한문학회[DOI]
  23. 문정우, "飛泉 田璣鎭의 생애와 詩世界", 南冥學硏究, (33), pp.163~196 (2012), 경남문화연구원
  24. 문정우, "19~20세기 江右 지역 艮齋 門人의 文藝 창작과 內容", 동방한문학, 61 (2014), 동방한문학회
  25. 이상필, "勿川 金鎭祜의 南冥學 受容 樣相", 남명학연구, 21 (2006), 경상국립대학교 남명학연구소
  26. 이의강, "澹山 河祐植의 生涯와 思想", 南冥學硏究, (25), pp.229~255 (2008), 경남문화연구원
  27. 이형성, "玄相允의 ‘艮齋評’에 대한 表裏的 측면 攷察", 간재학논총, 17 (2009), 간재학회
  28. 전병철, "老柏軒 鄭載圭의 南冥學 繼承과 19세기 儒學史에서의 의미", 南冥學硏究, (29), pp.229~268 (2010), 경남문화연구원
  29. 허권수, "南冥神道碑와 後世 儒林들의 論難", 南冥學硏究, (40), pp.119~164 (2013), 경남문화연구원[DOI]
  30. 구경아, "端磎 金麟燮의 學問性向과 詩世界", 박사, pp.2017
  31. 김익재, "釣隱 韓夢參 硏究", 석사, pp.2005
  32. 신한솔, "愚山 韓愉의 現實認識 考察 : 「中興私議」를 중심으로", 석사, pp.2021
  33. 양기정, "艮齋集解題" (2005), 한국고전번역원
  34. 오이환, "南冥學派硏究 上, 愚山文庫目錄解題" (1995), 남명학연구원출판부
  35. 최석기, "남명과 지리산" (2006), 경인문화사
  36. 최석기, "산천재로 가는 길 위의 노래" (2017), 경인문화사
  37. 최석기, "지리산 덕산동" (2019), 경상국립대학교 출판부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9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