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완의 국내민족운동
The domestic campaign for liberation of the Korean people by Park Dong-Wan, one of the people representatives from Christen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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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글은 3·1운동 당시 기독교계 민족대표의 한 사람이었던 박동완이 3·1운동을 통해 보여주었던 민족의식과 이후 국내에서 민족운동의 전 개 및 기독교신앙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박동완은 1885년 12월 27일 경기도 양평의 양반가문에서 출생하 였으며, 서울로 이주한 후 주로 근대적인 교육을 받는 과정에서 기독교 적 신앙과 지식을 갖춘 교계의 지도자로 성장하였다. 둘째, 박동완은 3·1운동에 기독교계 대표로 참가하여 민족대표로서 정치적 권위와 확고한 독립의 의지를 천명한 대표적 인물이었다. 그는 3·1운동의 발발을 통해 일본의 ‘동양평화론’의 허구성이 입증되었다고 역설하는 한편, 이후에도 독립운동을 꾸준히 전개할 의지를 천명하였다. 3·1운동 참여는 확고한 민족의식을 바탕으로 한 독립운동이었다. 셋째, 박동완은 1920년대 국내민족운동에서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신앙과 기독교적 민족운동의 노선을 견지하였다. 그는 1915년부터 1923년 까지는 기독신보의 서기와 주필을 역임하였으며, 1924년 이후에는 기독 교계 잡지 『신생명』을 통해 적극적인 기고 활동을 전개한 기독교계 언 론인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기독교의 감화력이 조선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으며, 조선사회의 당면한 문제와 모순을 기독 교 정신의 바탕 위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활동을 전개했다. 넷째, 기독교 신앙에 입각한 박동완의 민족운동과 사회활동은 3·1운동 이후 크게 3가지 방향에서 전개되었다. 그는 흥업구락부 참가, 신간회운 동 주도, 재만조선인옹호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였다. 신간회에서는 총무간사로 활동하면서 조직 내에서 기독교세력의 입지를 강화하는데 노력했다. 이는 3·1운동과 더불어 박동완이 국내에서 전개한 가장 대표적인 민 족운동이었다. 이상을 통해 박동완의 국내에서 민족운동은 투철한 기독 교 신앙과 일관된 민족의식을 견지하고 있었다. 박동완의 이러한 정신 과 독립운동 참여는 그가 하와이로 활동의 근거지를 옮긴 후에도 지속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Abstract
I studied Dong-Wan Park’s national consciousness, who was one of the people representatives from Christendom at the time of the Samil Independence Movement, and his domestic campaign for liberation of the Korean people after that and Christianity in the article. The summary is as follows; Firstly, Dong-Wan Park was of noble birth in Yangpyeong on 27th of December, 1885. After his moving out to Seoul, he grew up as a leader of Christendom with Christianity and knowledge in the course of his getting a modern education. Secondly, he participated in the Samil Independence Movement as a people representative of Christendom and clarified political authority and firm independence will as a people representative. Through the outbreak of the Samil Independence Movement he emphasized that Japan’s “theory of the East Peace” proved to be false and clarified his will that he would steadily continue to develop the independence movement. His participation in the Samil Independence Movement was his independence movement based on his firm national consciousness. Thirdly, he adhered to religious belief as a faithful Christian and the line of the Christian racial movement in the domestic racial movement in 1920s. From 1915 till 1923 he worked for Gidokshinbo (a Christian newspaper) as a clerk and then an editor. After 1924, he started to contribute articles to a magazine of Christendom “Sinsaengmyeong (New life)” as a Christian journalist. In addition, he had a belief that Christian influence could change Chosun and worked to solve the pressing problems and contradiction on the basis of Christianity. Fourthly, his racial movement and social activities based on Christianity were developed in 3 directions after the Samil Independence Movement. He participated in Heungup Club (a body for the independence movement), led the movement of Shinganhoi (anti-Japanese unified front) and actively took part in the movement to support the right of Koreans in Manchuria. He tried to strengthen the position of the influence of Christianity in the organization during his work for Shinganhoi as the secretary of general affairs As was mentioned above, he adhered to thorough Christianity and consistent national consciousness in the domestic representative racial movements including the Samil Independence Movement in which he participated. His spirit and participation in the independence movement seems to be continued after his moving out to hawa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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