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달한 임계점과 보존된 미래―발성영화의 정착과 경성 소재 조선인 극장의 연쇄 반응
The Reached Critical Point and the Preserved Future ―The Settlement of Talkie and the Chain Reaction of Theaters for Joseon People in Kyungs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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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식민지기 극장의 매체 공존 양상에 주목하면서, 발성영화의 정착이 불러왔던 연쇄반응과 주요한 생산의 변곡점들을 순차적으로 재검토하고자 했다. 1930년대 초반의 극장문화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것은 배급업과 극장업 종사자들이었는데, 점진적이며 신중하게 이루어졌던 발성영화 전환은 이들의 적대적 공존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극단을 상대로 한 대관업은 극장업자들이 배급업자들에 대해 협상력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 준 대응 수단이었다. 한편, 일본어 자막을 이용한 상영방식을 보편화했던 수입 발성영화는 언어 장벽으로 인해 소외된 관객을 만들어냈으며, 종족공간의 경계 역시 점차 모호해지게 되었다. 1934년에 발효된 쿼터제는 조선영화의 생산자들에게 기회로 인식되었는데, 최초의 조선어 발성영화 <춘향전>은 제도적 보장에 힘입어 영화에 등을 돌린 조선어 사용자들을 다시금 획득하기 위한 시도였다. 다만, <춘향전>이 추구했던 ‘조선적인 것’은 조선영화가 수출시장을 염두에 두기 시작하는 과정 속에서 변질될 수밖에 없었다. 더 나아가 <춘향전>에서 확인된 조선인 관객의 욕망은 동양극장의 탄생에도 동력을 제공했다. 연극 전용극장을 표방한 동양극장은 발성영화 전환 이후 대관에 어려움을 겪던 연극인들에게 무대를 제공했으며, 위협에 직면한 조선어 구술공간의 명맥을 잇는 곳인 동시에, 1920년대부터 형성되어 온 기대지평을 보존할 수있는 공간으로 기능했다. 공동체로서의 일체감과 감정적 상호작용을 토대로 하는 기대지평은 발성영화의 정착과 함께 퇴조하게 된다. 그러나 이는 연극을 통해 여전히 보존되고 있었는데, 대중극계의 역량을 집결시킨 동양극장의 탄생은 이러한 기대지평이 복류할 수 있는 거점을 제공했던 것이다.
Abstract
While paying attention to the coexistence of media in colonial theaters, this paper attempted to sequentially review the chain reactions and inflection points of major production caused by the settlement of talkie. It was the distribution and theater workers who played a leading role in the history of theater culture in the early 1930s, and the gradual and careful conversion of talkie was the result of their hostile coexistence. And the rental business was a factor that allowed theater workers to have bargaining power over distributors. Meanwhile, imported talkie, which generalized the screening method using super imposed subtitles in Japanese, created audiences excluded from watching due to language barriers, and the boundaries of ethnic spaces became increasingly ambiguous. The quota system, which took effect in 1934, was recognized as an opportunity for producers of Joseon films, and the first Korean talkie Chunhyangjeon was an attempt to acquire Korean speakers who turned their backs on the film thanks to institutional guarantees. However, the "Joseon-style" pursued by Chunhyangjeon was bound to deteriorate in the process of Joseon films starting to keep the export market in mind. Furthermore, the desire of the Korean audience identified in Chunhyangjeon also provided a driving force for the birth of the Dongyang Theater. The Dongyang Theater, which advocated a exclusive theater for the play, provided a stage for theater artists who had difficulty renting after the transition to talkie. In addition, this place continues the reputation of the Joseon language oral space facing threats, and at the same time functions as a space to preserve the expected horizon that has been formed since the 1920s. The horizon of expectations based on a sense of unity and emotional interaction as a community declines with the settlement of talkie. However, this was still preserved through the play, and the birth of the Dongyang Theater, which gathered the capabilities of the popular theater industry, provided a base for this horizon of expectations to retu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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