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야류 전승과정 연구 (1) –문장원, 천재동 증언을 중심으로
The Study on process of transmission “DongraeY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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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동래들놀음 전승과정을 고찰했다. 고찰 대상은 유래와 복원과정, 명칭, 탈모양, 동래야류의 성격 등이었고 고찰방법은 문장원, 천재동의 증언과 기존의 논저를 비교하는 방법을 택했다.탈의 경우 말뚝이탈의 원래 모습, 영노탈의 복원과정, 비비양반, 영감탈의 복원, 영감·할미과장에서 할미 가 죽는 공연과 최상수채록본의 차이, 동래야류의 성격과 야류라는 명칭, 수영야류와의 변별성 등을 구체적으로 논의했다.동래야류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9세기 말엽으로 보는게 타당하다. 동래야류는 1935년에 중단되었다가 1946년에 일차 복원, 1965년에 이차 복원하였다. 무형문화재 지정후 1969년 동래고등학교 운동장 공연부터 본격적으로 전과장이 공연되기 시작했다.동래야류는 독립해 공연되지 않았다. 동래 민속시리즈와 밀접한 관련아래서 공연되었다. 줄다리기 이후 이기는 쪽에서 야류를 주최했다. 야류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동서부에 하나씩 있었다. 탈도 배역마다 하나씩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탈의 모양이나 춤, 내용의 전개나 양식이 일정할 수가 없었다.동래들놀음은 정월 대보름날 전후하여 연희했다. 줄다리기 하는 이튿날 밤늦은 시각부터 다음날 해뜰때까지 한 것이 동래야류다. 줄다리기 뒷풀이 참여자들 모두 종이를 뒤집어 썼다. 일종의 가면무도회라 할 수 있겠다. 밤 12시 지나면 사람들이 많이 집에 간다. 동래야류는 그때 시작이다.현재의 공연에는 할미가 죽는데 동래들놀음 최상수채록본에서는 영감이 죽는다. 문장원은 그런 경우가 없었다고 단언한다. 1967년 이전 동래야류 전수는 정해진 과정이 없었다. '따로 배운 것은 없고 해마다 하는 것을 보고 하게' 되었다.당시에 동래야류를 놀던 사람은 직업이 없었다. 일종의 '놈팽이'들이었다. 집에 곡식은 있고 할 일이 없으니 기방에 쫓아다녔다. 그런 사림들이 춤을 추었다. 그래서 동래야류는 민속연희의 놀이적 기능은 약한 편이다. 그리고 동래야류의 명칭은 꾸며진 무대의 '산대'와 차별되는 의미로서 또 민속놀이적 기능보다는 연희적 측면을 강조해서 야희하고 한 것으로 보인다.탈모양이나 의상이 30년대와 많이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탈은 그해 만들어 공연하고 태웠고 새로 제작했기 때문에 조각할 때마다 조금은 달라졌다. 말뚝이탈의 경우 지금은 눈을 붙여 만들기도 하지만 그때 만든 것 중에는 눈구멍을 뚫은 경우가 더 많았다.천재동에 따르면 '공연하면 탈을 태우고 새로 만들었고, 탈을 만드는 해에 박이 클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고 그때 그때마다 편한대로 했기 때문에 고정된 형상이라는 것이 없었다' 한다. 말뚝이의 이빨은 좌우측이 다른 모양으로 말뚝이의 이중성을 나타낸다. 말뚝이 탈의 오른쪽 이빨은 날카롭다. 양반을 공격하는 의미로 작용한다.영노탈 복원은 1989년경에 이뤄졌다. 동래의 문둥이와 할미의 모습에 근거해서 영노탈을 만들었다.설령 현재의 영노탈이 동래야류 영노탈의 원형이 아니더라도 민속은 고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원형이라는 것이 발견된다하더라도 현재탈로 공연해도 무방하다. 혹시 발견된다하더라도 그 탈도 원형이라고 할 수 없다. 그냥 과거의 탈일뿐이다.현재양반탈의 눈썹은 일자이고 눈주변에 윤곽선이 색칠되어 있다. 경복궁에 보관된 탈과 송석하 유고집에 있는 탈(예전탈이라 지칭)은 그렇지 않다. 콧수염은 예전탈이 더 무성하다.영감은 차양반탈로 비비양반은 넷째양반탈을 썼으나 지금은 각각의 탈을 만들어 사용한다. 영감과 비비양반의 탈을 현재의 모양으로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정확히 언제인지 알 수 없었다.
Abstract
In this article, process of transmission ‘DongraeYaryu’ will verify its question through verbal evidences. Verbal evidences are dictated by ‘Mun, Jang Won’ who is a owner of important intangible cultural, a advanced aged & supreme performer in ‘DongraeYaryu’ and ‘Cheon Jae Dong’ who is a owner of important intangible cultural, a advanced aged artisan in ‘DongraeYaryu’. ‘DongraeYaryu’ is a Korean traditional mask dance. It was performed in Dongrae Busan where is urban area from ancient. ‘DongraeYaryu’ has been handed down in Dongrae along the coast, originating from Ogwangdae performed in the inland areas of Gyeongsangnam–do. Yaryu was named in that it was conducted and performed in the open field. Ogwangdae is a masque by professional actors in urban areas, while Yaryu was performed by non professionals in rural areas. Many articles indicated that ‘DongraeYaryu’ has some questions about its process of transmission. For example, when masks are made, Malttugi(a servant), Yangban(a nobleman), Yeongno(a demon) and which side is dead : Yeonggam(an aged nobleman) or Halmi(a wife of aged nobleman). This article make clear about those questions by verbal evidences which are offered by Mun & Chon. Masks are made by ‘DongraeYaryu’ players and masks were burned out after performance 1980's before. Therefore masks have no archetype. Malttugi mask has two types. The first is pictured eyes & the second is opened hole eyes. Two types are right ‘DongraeYaryu’ masks. Yeongno mask is made by Chon in 1989. That mask made through many data. Yangban masks are made by several types. In Yeonggam․Halmi act, there is no case : Yeonggam's deat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