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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태청(樺太庁) 자료를 통해 본 일본제국의 사할린 한인 동원 실태 연구

A Study on Korean Mobilization of Japanese Empire in Sakhalin by Karafutocho Docu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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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사할린 한인은 식민지배와 남북분단, 그리고 냉전이라는 시대의 비극을 강제동원과 집단억류라는 극단적인 형태로 체험한 집단이었다. 한국사회에서 이들의 존재는 1990년 한소수교와 영주귀국 문제로 부각되었다. 이 문제는 아직도 전후보상 및 배상문제라든가 영주귀국으로 인한 2차 가족이산이라는 형태의 현재진행형 사안으로 남아있다. 그 동안 국내의 관심은 주로 일본과 구 소련의 책임문제를 중심으로 이들이 왜 해방 후 돌아오지 못했는가 하는 점에 집중되었다. 그러나 정부와 학계 모두 이들이 어떻게 사할린으로 동원되었고, 그곳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원사료를 통해 검증하기보다는 일본이 강제로 동원했고, 소련이 귀국을 막았다는 선험적인 논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에 본 연구는 사할린주역사기록보존소(GIASO)에 소장된 일제강점기 문서들을 화태청 공문서, 경찰관계문서, 기업관계문서로 나누어 915개 파일, 약 1만 매의 국내 수집자료를 통해 그 내용을 소개하고 한인의 동원 및 거류실태와 관련된 기록을 살펴 화태청의 동원 관련 정책, 경찰조직의 감시와 통제 방식, 개별 기업 및 작업장의 노동조건과 처우를 종합적으로 고찰하고자 했다. 연구 결과 경찰관련 기록은 매우 상세하게 한인들의 신상을 파악하고 있었고, 국책에 따라 시기 별로 감시의 대상과 방법을 바꾸어 가며 한인들을 관리하고 있었다. 또한 화태청의 한인 정책은 해당 지역의 독자성 보다는 일본 중앙정부의 정책을 시행하는 대리인으로서의 성격이 강했다. 그리고 기업은 한인을 직접 관리하기보다는 각종 구미(組)라는 하청업자를 통해 간접 관리하고 있었고, 전황이 악화됨에 따라 한인의 통제와 관련해 화태청-경찰-기업 간의 공조가 더욱 강화되었음을 확인하였다. 화태청의 정책, 경찰의 감시와 통제, 기업 및 단위 작업장의 노동환경과 처우를 층위별로 입체적으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보다 면밀한 사료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본 연구를 통해서 일단 경향적으로 이들 3자간의 연계성이 포착된 만큼 향후 사료를 기반으로 한 대단위 후속 연구가 이루어진다면 사할린 한인의 동원 및 거류실태를 보다 입체적으로 복원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울러 상기 문헌기록을 조선총독부자료, 기 수집 구술자료, 1970년대 이래 일본에서 축적된 사할린재판자료와 교차 검증해 나간다면 사할린 한인문제에 관한 새로운 역사상을 정립할 수 있을 것이다.

Abstract

The Koreans in Sakhalin was the tragic victims of forced labor groups during the Japanese empire era, and those of detained by USSR after the second world war. Korean society came to have interest in these Koreans in Sakhalin just after 1990, the year of korea-russian treaty of amity and successive repatriation of the koreans who was born before August 15th of 1945. But this issue is still current one until now So far the main interest of korean society is the responsibility of Japan and USSR, and Why the Koreans in Sakhalin was not able to return to homeland, korea. On the other hand, it neglected the reason why the koreas came to be mobilized to Sakhalin and how they lives there. And it did not try to verify the process from mobilization to detention in abroad by historical documents or materials. That’s why this paper was made for, and tried to study the historical documents in Sakhalin Archives(GIASO), which is composed of 3 sections(Karahutocho official documents, police supervision documents, and civil companies documents), 915 files with over 10,000 images. In this study records which include korean mobilization and forced labor was abstracted and sorted from 1,260 images of documents, which are about Karahutocho’s policy for koreans, the way how the local police control the koreans, and labor conditions and reward in workplace. After the study it is verified that Karahutocho itself was the loyal agent of central government of japanese empire, local police took more drastic oppression steps about koreans, and civil companies kept the same steps with Karahutocho and local police, the cooperation among them got stronger for the more exploitation of koreans in the negative process of the war situation. Through this study it is identified we can restore the various historical facts by way of those documents produced in Sakhalin during the japanese era. If those historical documents should be linked oral history of the victims or lawsuit documents produced In japan in 1970s, we can find new images of Koreans in Sakhalin iss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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