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1799년 전염병[胡疫]의 대유행과 국가의 위기대응 방식

Influenza Swooping Joseon in 1799: Relief for the People

0

조회

0

다운로드

6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주제분류역사학

초록

조선후기 전염병의 실상과 이에 대한 국가의 대응 방식을 검토한 것이다. 본 연구는 1798년 연말부터 1799년 초까지 전국을 휩쓸었던 전염병에 주목하였다. 당시 전국에 전염병이 유행하였고,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국가는 어떻게 대응하였나. 개인의 일기에서 당시의 사정을 확인해 본다. 류의목(柳懿睦, 1785~1833)은 15세가 되던 1799년 1월 7일 감기 걸렸다. 원래 병을 앓고 있는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 대부분이 같은 증상이었다. 다행히 가까운 친족들 가운데 목숨을 잃은 이는 없었다. 그러나 평안·함경·황해·전라·강원도 감사(監司)가 모두 죽었다는 소식이 들렸고, 정승 김종수(金鍾秀, 1728~1799)와 채제공(蔡濟恭, 1720~1799)이 사망하였다는 소식도 들었다. 서울에서만 6만 명이 이 병으로 죽었다고 하였다. 국왕 정조는 이것을 국가 재난상황이라고 판단하였다. 1799년 1월 13일 진휼청에 백성을 구휼하도록 명하였다. 다음으로 여제(厲祭)와 위제(慰祭)를 거행하였다. 전염병으로 사망한 시신은 국가에서 민간의 토지를 구입해서 격리하여 매장하였고, 봄철 군사훈련을 일제히 정지시켰다. 빈민에게 쌀과 곡식을 공급하였다. 이런 조치들은 약 20여일 사이에 이루어졌다. 이에 대해 15세의 류의목은 전염병 소식을 매일 일기에 빼곡하게 기록하였다. 그는 이 전염병을 ‘호역(胡疫)’이라고 말하였다. ‘호역’, 중국에서 들어온 전염병이라는 말이다. 정말 중국에서 유입되었을까? 알기는 어렵다. 다만 의주는 특히 피해가 심각하였다. 기록자의 시각에 민간의 여론과 국가에 대한 그들의 인식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당시 국가는 전염병에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대응하였고, 백성들은 그런 국가를 신뢰하였다.

Abstract

Ryu Ui-mok(1785~1833) contracted influenza on January 7, 1799 at the age of 15. The next day, the family of an elder brother of his family, the family of a younger brother of his father, and families of his father's cousins all contracted it at once when his grandfather returned after going out. A few days later, seven of eight governors including the governor of Gyeongsang Province died. The number of deaths reached 400 in Andong and 63,000 in Seoul. King Jeongjo(正祖) of Joseon determined that it was a national disaster and crisis, taking on relief works first. He gave an order to relieve people to Jinhyulcheong(賑恤廳) on January 13, 1799 and had Yeoje(厲祭) and Wuije(慰祭) held. These were traditional approaches, but they had much influence on the opinions of the people. He also had the bodies of the deceased due to the infectious disease isolated and buried in private land that was owned by people and purchased by the government for the purpose. The regular spring military campaign was suspended altogether. These measures were taken during a period of approximately 20 days. Under this miserable situation, interesting stories spread among the people. It is difficult to trace the origin of an infectious disease. It must have been even more difficult in the traditional society. The stories spread among the people during a severe infectious disease must reflect the consciousness of the people. Ryu Ui-mok at age 15 called this cold "Hoyeok(胡疫)" writing down what he heard. He believed that the cold was transmitted from China. The government made fast reactions to the influenza spreading around the nation, and the people seemed to have trusted the government.

참고문헌 (20)

  1. "英祖實錄", ~
  2. "正祖實錄", ~
  3. "經國大典", ~
  4. "大典通編", ~
  5. "國朝五禮儀", ~
  6. "조선후기 수교자료 집성(Ⅱ)" (2010), 한국법제연구원
  7. 류의목, "河窩日錄" (2015), 한국국학진흥원
  8. 변정환, "조선시대의 역병에 관련된 질병관과 구료시책에 관한 연구(1)", 동서의학, 10 (1985)
  9. 변정환, "조선시대의 역병에 관련된 질병관과 구료시책에 관한연구(2)", 동서의학, 10(2) (1985)
  10. 김호, "조선전기 대민 의료와 의서편찬", 국사관논총, 68 (1996)
  11. 이욱, "조선시대 국가 사전(祀典)과 여제(厲祭)", 종교연구, 19 (2000)
  12. 이규근, "疾病史 연구-『朝鮮王朝實錄』의 전염병 발생 기록을 중심으로-", 國史館論叢, 96 (2001)
  13. 이욱, "조선시대 재난과 국가의례" (2009), 창비
  14. 김명자, "『河窩日錄(1796∼1802)』을 통해 본 豊山柳氏 謙巖派의 관계망", 대구사학, 124, pp.147~176 (2016), 대구사학회
  15. 김호, "16~17세기 조선의 지방 醫局 운영: 경북 영주의 濟民樓를 중심으로", 국학연구, (37), pp.391~434 (2018), 한국국학진흥원[DOI]
  16. 김백철, "영조윤음" (2019), 그물
  17. 김호, "시골 양반 역병(疫病) 분투기―18세기 구상덕의 『승총명록』을 중심으로", 역사비평, (131), pp.189~221 (2020), 역사문제연구소
  18. 송미영, "제중원 한글 의학 교과서에 나타난 전염병 관련 어휘에 대한 고찰 ― 두창(痘瘡)과 콜레라를 중심으로 ―", 국어사연구, (31), pp.233~263 (2020), 국어사학회[DOI]
  19. 배대호, "19세기 전후 사대부가의 감염병 양상과 대처 -정원용의 『경산일록』을 중심으로-", 조선시대사학보, (95), pp.279~311 (2020), 조선시대사학회[DOI]
  20. 이기봉, "조선후기 疫病에 대한 정부의 대응 - 正祖 시기의 특징을 중심으로 -", 대구사학, 141, pp.193~226 (2020), 대구사학회[DOI]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6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