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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속현 단위 읍지 편찬의 배경과 목적 - 대구 화원현 읍지 『금성집언』(1788)을 중심으로 -

The Background and Purpose of Compiling Local Records(Eupji) of Sokhyeon During the Late Joseon Dynasty - Focused on Geumseong Jipeon(『錦城輯言』), the local records(Eupji) of Hwawon - hyeon in Daeg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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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이 글은 1788년(정조 12) 이수완(李壽完)이 편찬한 화원현 읍지인 『금성집언(錦城輯言)』을 분석하였다. 조선 건국 이후 성주목에 속하였던 화원현(화원 8방)은 1685년(숙종 11) 경상 감영 소재지인 대구도호부에 속하게 되었다. 이로부터 100여년이 지난 1788년(정조 12) 화원현의 사족인 이수완은 이 지역의 읍지인 『금성집언』을 편찬하였다. 이 책은 일종의 속현(屬縣) 지역에서 편찬한 읍지라는 점에서 그 가치와 의의가 크다. 이보다 앞선 1749년(영조 25) 권상일이 『상산지』를 증보하면서, 상주목 속현인 산양현(산양 5면)의 읍지인 『산양지』 편찬을 시도한 기록이 보이나 현전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 다만 이 무렵 『상산지』 증보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단밀현지』가 남아있다. 『금성집언』은 성주읍지인 『경산지』의 화원현 관련 내용을 위주로 하였으며, 『여지도서』와 『대구읍지』의 구성 항목에 따라 이들 읍지에서 누락한 내용을 중심으로 보완하였다. 이 책은 속현 사족(士族)들이 중심이 되어 읍지 편찬 과정에서 자신들의 지역이 소외된 것에 반발하면서, 지역 사족의 현양(顯揚)과 영향력 확대를 도모하고, 지역의 정체성(正體性)을 찾기 위해 편찬한 읍지이다. 『대구읍지』와 비교해 보면, 방리(坊里)를 비롯하여 명승(名勝), 패설(稗說), 이문(異聞) 등 화원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故事]가 풍부하게 실려 있다. 그러나 의욕과는 달리 수록된 인물들은 대부분 『대구읍지』 편찬 기준에는 미흡한 화원현 지역 단위의 인물들이었다. 일연이나 이숭인, 정구 등 전국적인 인물을 발굴하려는 노력도 부족하였다. 18세기 말 당시의 지역 사회 사족들을 중심으로 자신들과 관련 있는 인물을 중심으로 수록하고자 한 인식의 한계를 드러냈다.

Abstract

This paper analyzed Geumseong Jipeon(『錦城輯言』), the local record of Hwawon-hyeon(花園縣), compiled by Lee Suwan(李壽完) in 1788(the 12th year of King Jeongjo). Hwawon-hyeon used to belong to Seongju-mok(星州牧) since the founding of the Joseon Dynasty, but in 1685(the 11th year of the King Sukjong) came to belong to Daegu-dohobu(大丘都護府), where the Gyeongsang- do government office was located. A hundred years since then in 1788(the 12th year of the King Jeongjong) Lee Suwan, the Hwawon-hyeon gentry compiled Geumseng Jipeon, the local record of Hwawon area. This book derive sits value and significance in that it was the local record compiled in Sokhyeon(屬縣), the small administrative division. There is a record prior to this time in 1749(the 25th year of the King Yeongjo) that while editing Sangsan Ji(『商山誌』), Gwon Sangil(權相一) attempted to compile Sanyang Ji, the local record of Sanyang- hyeon(山陽縣), the Sangju-mok(尙州牧) Sokhyeon, but it does not exist. There exists only Danmil-hyeon Ji(『丹密縣誌』), which seems to have been produced while supplementing Sangsan Ji. The main contents of Geumseong Jipeon focused on Hwawon-hyeon related topics in Gyeongsan Ji(『京山志』), the Seongju Eupji(the Seongju town record) and supplemented the omitted contents of local records in the Yeojidoseo(『輿地圖書』, the national Eupji) and Daegu Eupji(『大丘邑誌』) according to their categories. Geumseong Jipeon was compiled mainly by the Sokhyeon gentry who rebelled because it felt its area was being ignored while the local records were compiled. By compiling its own local record, the gentry wanted to promote its local gentry family names while attempting to expand their influence and promote their local identity. Compared to Daegu Eupji, the Gemeseong Jipeon is rich with many passed-down stories of the Hwawon area including the village scenic spots, mysterious and interesting folk tales and rumors. However, against the original enthusiasm, the people in the record were limited to local figures in the Hwawon-hyeon which did not satisfy the Daegu Eupji compiling standards. It was lacking in the attempt to discover the national figures such as Ilyeon(一然), Lee Sungin(李崇仁) and Jeong Gu(鄭逑). This shows its limited judgement in trying to discover the local figures by focusing solelyon the local commu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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