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공민왕대 정부 주도 교역의 여건 및 특징
The Trade Policy of King Gongmin-wang’s Administration: Environment and Characteris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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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공민왕대의 한-중 간(고려-원 간) 교역 여건은 이전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강절행성 및 요양행성으로부터의 방문 재개, 그리고 그에 수반된 상인들의 고려 재방문 등은 고려-원 간 교역을 중개할 중국 측 무역주체들의 고려 왕래를 의미했다는 점에서, 분명 공민왕의 교역정책에는 유리한 정황이었다. 그러나 같은 시기 재개된 기황후세력의 고려물자 징발, 그리고 1350년대 전반 원보초의 급격한 가치하락 및 퇴출 등은 공민왕의 무역정책에 심각한 악재가 될 다분히 부정적 정황이었다. 이 두 가지 긍정적·부정적 정황 중 후자가 전자를 압도한 탓에 공민왕은 적극적인 교역정책을 구사할 여력을 상실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강남행성이든 요양행성이든 중국 측의 적극적인 교류 제의에 상당히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게 된다. 그러나 공민왕이 대원, 대중국 교역의 가능성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으며, 그가 확곽첩목아와의 교류를 통해 활로를 타개해나가려 한 모습에서 그를 확인할 수 있다. 확곽첩목아는 공민왕으로서는 기황후세력과의 관계 개선을 도모할 통로였던 동시에, 기황후세력과의 개선된 관계를 기반으로 공민왕이 원내 대도지역 고려인사회의 경제적 번영에 접촉할 창구였다. 한편 이후 원의 몰락으로 그것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되자, 공민왕은 명과도 다양한 형태의 접촉을 시도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러한 시도들이 답보상태를 보이는 한편으로, 고려 민간상인들 및 관료, 권세가들의 대원, 대명 사교역이 더욱 활기를 띠게 된다. 공민왕대의 대외교역 정책은 13세기 후반 이래 100여 년 가까이 지속돼온 고려-원 간 제국과의 교류가 정부주도 교역의 영역에서는 어떠한 모습으로 마무리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정황이라 할 수 있다.
Abstract
The overall environment that determined the direction and details of King Gongmin-wang’s governmental trade policy was quite different from those of earlier periods. Foreign merchants’ visit to the Korean peninsula was again increasing, so that was a good thing. The authorities from both the Chinese Jiangnan and Liaodung regions were trying to establish a relationship with Gingmin-wang, and in order to open communicative channels, they were showering the Goryeo government with all kinds of commercial goods and valuable commodities. Yet oddly enough, king Gongmin-wang was not that forthcoming in responding to such approaches of foreign entities. He was rather passive, and instead of returning the favor, he virtually remained inactive. There seem to have been a couple of reasons for such behavior, and among those reasons there was the increase in Dowager Queen Gi’s exploitation of Goryeo goods, as well as the collapse of the Yuan empire's main paper currency. While the former prevented king Gongmin-wang from securing enough material to invest in Goryeo-Yuan trades, the latter rendered Gongmin-wang unable to open trade relationships with various factions as the Yuan paper currency he stocked was no longer usable in trades with the Chinese. So, king Gongmin-wang needed another option to keep his trade policy alive, and that was to tap into the activities of the Goryeo community which was thriving at the heart of the Yuan empire, Beijing. In order to do that, he had to modify his prior hostile relationship with Dowager Queen Gi, and for that he opened a dialogue with Kokotemur, who was a victorious military figure and a staunch supporter of Queen Gi and his son, the crown prince and next leader of the empire. Later, when his plan failed once again due to the abrupt fall of the Yuan empire, he sought for a similar relationship with the newcomer Ming dynasty. Yet Ming was even more daunting than Yuan in its blatantly aggressive interest in Goryeo commodities. As a result king Gongmin-wang’s trade policy was never fully realized, and the Goryeo civilians and power figures continued their trade activities and transactions with their Chinese counterp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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