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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잡지를 통해 본 1920/30년대 ‘라디오 방송’의 수용에 관한 연구 :《별건곤》과 《삼천리》를 중심으로

A Study on the Acceptance of Radio in 1920s/1930s Modern Korea; Through 《Byeolgeongon》 and 《Samcheonri》 as Modern Magazi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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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신문방송학

초록

1927년 2월 16일 경성방송국이 개국했다. 일제 강점기 하에서 등장한 경성방송국은 식민통치를 위한 도구로 기능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 땅에 근대성을 전파하는 근대 미디어이기도 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1920/30년대에 활발하게 발행되었던 《별건곤》과 《삼천리》를 통해 근대 미디어로서 라디오가 어떠한 표상으로 수용되었는지를 살펴본다. 연구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조선의 근대 지식인들은 근대 과학기술의 산물로서 라디오에 대해 분명히 인식했다. 과학적 원리를 통해 라디오가 세계를 연결하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라는 것을 분명히 전달하고자 했으며, 이러한 과학기술 역량이 조선에도 축적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도 했다. 문명의 이기로서 라디오가 가진 자와 지배자의 이익에 우선한다는 것도 직시했다. 라디오는 근대적 공간과 풍경을 새롭게 만들어 낸다는 것에도 주목했다. 라디오 방송을 하는 경성방송국은 서울의 새로운 구경거리가 되기도 했고, 지붕 위에 라디오 안테나를 매단 문화촌 역시 새로운 근대적 풍경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또한 거리의 라디오 확성기는 근대 문명의 도구를 활용한 새로운 마케팅 수단으로서 활용되면서 근대적 거리 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라디오는 또한 연예오락 프로그램을 통해 식민지 조선에 근대적 대중문화를 전파하기도 했다. 1920/30년대의 근대 잡지 《별건곤》과 《삼천리》는 이같은 라디오의 역할을 기록하고 전파했다. 신문물에 경이를 표하면서 우리 조선도 이러한 신문명을 만들어내는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또한 라디오라는 신문명과 결합하는 대중문화를 지원하기도 했으며, 그 부작용을 날카롭게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근대성의 매개자로서 라디오에만 집중했지, 식민지 통치 도구로서의 라디오의 모습에는 소홀했다는 아쉬움을 보여주기도 했다.

Abstract

In 16th Feburary 1927, Gyeongseong Broadcast Station had launched. Gyeongseong Broadcast Station, which had been operating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had functioned as an apparatus of occupation. But it also regarded modern Radio media system which spread the modernism. So, this study examine how Radio had accepted in modern Korea and what radio represented relations with modern life. For this, this study review modern reading material 《Byeolgeongon》 and 《Samcheonri》, which widely read in 1920s-1930s as popular magazines. To sum up this study, modern Korea’s intellectuals were obviously perceived Radio to be creature of modern science and technology; they conveyed that Radio is new technology and communication system to linking the world and emphasized this kind of scientific ability must accumulate in modern Korea. They also understood modern conveniences like Radio serve to promote benefit of bourgeois and dominator. On the one hand, Radio as a modern material set the modern life fashion in street and cityscape; Gyeongseong Broadcast Station become known as a sightseeing building, and modern village which install radio antenna on the roof also created modern landscape. Radio loudspeaker was utilized for fresh marketing technique. On the other hand, radio broadcasting created and spread the modern mass-culture through entertainment program such as popular music, radio drama, comic monologue. 《Byeolgeongon》 and 《Samcheonri》 as modern reading materials reported and delivered these Radio’s features and social phenomenon; They bolstered the modern mass culture which connected radio and pointed out the adverse reaction. Like this, these two magazines mainly focused Radios’s feature as a mediator of modernism, but they were careless about the another radio’s feature closely related with an apparatus of colonial occup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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