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吳駿善의 학문성향과 의리정신

吳駿善的學問性向與義理精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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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유교학

초록

奇正鎭(蘆沙, 1798~1879)이 호남에서 강학할 때에, 여러 지역 출신의 제자들이 그의 문하에 몰려들었다. 이들은 기정진의 성리학과 위정척사 정신을 투철히 계승하고, 각자 거주 지역에서 강학과 의병활동 등을 활발하게 전개하여 노사학파의 위상을 다지는 데 기여하였다. 기라성 같은 기정진의 문인들 중에서도 吳駿善(後石, 1851~1931)은 비교적 만년 제자그룹에 속한다. 그는 긴 세월동안 志於齋․氷雪堂․永思齋․聳珍精舍 등에서 강학과 저술활동을 병행하였는데, 국내외 정세가 급변함에 따라 유학의 전통이 붕괴되어가던 시대상황 속에서도 道學의 의리정신을 강인하게 실천한 인물이다. 이 글은 조선조 후기, 한말, 일제치하에서 활동한 오준선의 학풍과 몇 가지 성리설, 그리고 현실인식에 나타난 의리론 등을 살펴본 것이다. 도학에서 발현된 오준선의 의리정신은 家學의 전통으로 내면화되었고, 기정진 성리학의 영향을 받아 체계화되었으며, 당대 기호 산림들을 순방하면서 공고화되었다. 그는 전문적인 성리학 저술을 남기지 않았지만 기정진의 성리설을 師說로 묵수할 정도로 깊이 받아들였고, 이를 통해 田愚의 性師心弟說을 비판할 수 있었다. 그는 전체적으로 존주의리에 기반을 두고 역사와 생활을 해석하였으며, 특히 抱道自靖의 의리를 택하여 용진정사라는 공간을 통해 많은 제자들에게 仁義를 보존하고 善을 구현하는 교육을 강조하였다. 유학의 전통이 흔들리고 붕괴되는 시대를 만나 의리학풍을 지켜 제자들을 양성했던 오준선의 역할은 그 시대에 사표가 되기에 충분하였다.

Abstract

奇正鎭(蘆沙,1798~1879)是朝鮮時代理學六大家之一,也是個朝鮮後期衛正斥邪派的精神支柱,他在湖南講學時,全國各地的學生都來找他學習。他們不但徹底繼承了他的性理學及衛正斥邪精神,而且以居住地爲據點積極展開講學活動與義兵活動,而爲了提高蘆沙學派的位相做出不少貢獻。他培養了很多學生,吳駿善(後石,1851~1931)是他的高徒之一,可以說晩年時期的門徒。吳駿善很長時間在志於齋、氷雪堂、永思齋、聳珍精舍等地培養後進學生,與其同時從事於著述活動。隨着國內外形勢急變,傳統儒學體系也出現崩壞的樣子。在這樣的情況下, 他要努力實踐道學的義理精神。在這篇文章硏究了在朝鮮朝後期、韓末、日帝治下活動的吳駿善的學風、幾個性理說、在現實認識方面出現於義理論等等。在他的道學風之下發現的義理精神, 以家學繼承優良傳統, 受到奇正鎭性理學的影響而形成了一定的理論體系, 而通過結識畿湖山林學者來更加鞏固。雖然他沒有專門性理學著述, 但是深受奇正鎭的性理說做爲師說而固守, 在此基礎, 可以批評田愚的性師心弟說。總而言之, 他以尊周義理爲理論的基盤, 而解釋了歷史和生活, 尤其選擇抱道自靖的義理, 利用聳珍精舍的空間, 給許多學生强調了保存仁義、實現善治的敎育。遇到動搖而崩壞傳統儒學體系的時代, 吳駿善旣固守了義理學風, 也培養了門徒, 對於當時社會起着極大的作用, 被稱爲當代師表。

참고문헌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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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蘆沙先生淵源錄" (1960), 澹對軒
  3. "蘆沙先生全集(奇正鎭)" (1983), 보경문화사
  4. "宋子大全續拾遺(宋時烈)" (1993), 민족문화추진회
  5. "聳珍誌" (1949), 聳珍精舍
  6. "韋堂先生文集(趙章燮)" (1997), 경인문화사
  7. "毅庵集(柳麟錫)" (2004), 민족문화추진회
  8. "後石先生文集(吳駿善)" (1990), 경인문화사
  9. 금장태, "朝鮮 前期의 儒學思想" (1997), 서울대학교출판부
  10. 금장태, "儒學近百年" (1984), 박영사
  11. 금장태, "續 儒學近百年" (1989), 여강출판사
  12. 安晉吾, "奇蘆沙의 理哲學에 관한 硏究: 理一分殊의 哲學體系를 中心으로", 박사, pp.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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