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성룡 ‘문충’ 증시(贈諡)에 대한 김장생의 반대와 그 배경
The Background behind Kim Changsaeng's Accusation of Disloyalty against Ryu Sŏngnyong and the Opposition to the Posthumous Title ‘Munch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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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인조 4년 서인의 지도자인 사계 김장생이 남인의 종사(宗師)인 서애류성룡의 시호를 ‘문충(文忠)’으로 정하는 데 대해 반대한 경위와 배경 등을 살펴보기 위해 쓴 것이다. 김장생의 반대 이유는 류성룡이 임진년에 명군 안내를고의로 기피하여 선조가 선천에서 명군과 직접 조우토록 하는 불충(不忠)을 범했다는 것이었다. 이 주장은 백사 이항복의 경험담에 근거를 둔 것이라고 하였지만, 후일 청음 김상헌은 우암 송시열에게 ‘류성룡을 높이 평가하는 이항복이그런 말을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피력하였다. 그리고『징비록』 ⋅『진사록』등 류성룡이 남긴 유저에서는 이 ‘의전 차질’이 왕명을 토대로 정주(定州)의 난민 진압과 양곡 보호 등에 시간을 소모하느라 선조를 앞질러 가지 못한 때문임이 발견되었다. 따라서 ‘의전 차질은’ 불가피한 공적(公的) 과실에 불과하였으므로, 김장생의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한 것이었다. 그런데 김장생이 이렇게 류성룡을 비판⋅왜곡한 것은 한두 가지에 그치지 않았다. 따라서 차제에 그가 지은 「송강행록」에 나타난 해당 사례 등을 간략하게나마 짚어 보았다. 그리고 김장생이 류성룡의 시호에까지 반대를 했던 데에는, ‘문충’ 시호에 목말랐던 가문의 내력과 함께, 동서분당 및 기축옥사와 연관된 이이⋅정철⋅송익필을 추숭⋅ 변호하려는 등 당파적 배경이 있었던 것으로 분석하였다. 류성룡의 ‘문충’ 시호논란 등 여러 가지 비판⋅왜곡 사례는 기축옥사 등 살벌한 당쟁 후유증의 하나였지만, 한편으로는 남인들의 위상을 낮추어 서인의 치세를 공고히 하려는 일환으로도 생각된다.
Abstract
This article discusses why Kim Changsaeng, a leader of the Sŏin faction in the fourth year of Injo's reign, was adamentaly opposed to giving the posthumous title of "Munchung" 文忠 to Ryu Sŏngnyong, a leader of the Namin faction. Kim Changsaeng opposed this decision because Ryu Sŏngnyong deliberately avoided guiding the Ming army in the Imjin War, which Kim Changsaeng considered the show of disloyalty to the king. This claim, based on the testimony of Baeksa Yi Hangbok, was later challenged by Kim Sang-hŏn, who argued that Yi Hangbok, who highly regarded Ryu Sŏngnyong, would not have made such a statement. Moreover, records left by Ryu Sŏngnyong, such as the "Jinsarok," revealed that his delay in royal instructions was not to show disloyalty but to suppress rebellions and protect grain in Chŏngju 定州. Therefore, Kim Changsaeng's argument lacks credibility. However, Kim Changsaeng's criticism of Ryu Sŏngnyong did not stop at this point. It extended to instances mentioned in Songgang Haengnok. The opposition to Ryu Sŏngnyong's posthumous title "Munchung" was analyzed in the context of Kim Changsaeng's factional background. His faction sought to defend and advocate Yi Yi, Jung Ch'ŏl, and Song Ikp'il, who were associated with regional interests. While the criticism against Ryu Sŏngnyong and the controversy over his posthumous title were a result of fierce factionalism, they also served as a strategy to solidify the dominance of the Sŏin faction by undermining the prestige of the Namin fa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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