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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中·日 莊子學의 비교 검토를 통한 朴世堂·韓元震의 莊子注 연구 - 南宋 林希逸, 에도 하야시라잔과의 비교 검토를 중심으로 -

Commentary of Zhuangzi in the Chosun dynasty - Compared to the Studies on Zhuangzi of Lin Xiyi in the Southern Song period and of Hayash Lazan in the Edo perio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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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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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조선시대 단 두 종뿐인 장자 주석인, 서계 박세당(1629~1703)과 남당 한원진(1682~1751)의 장자 주석에 관하여 당시 동아시아 장자학의 맥락에 기반하여 그 사상사적 의미를 심도있게 파악하기 위한 비교연구이다. 조선의 老莊學은 삼봉 정도전의 『心氣理』편에서 노장을 氣에 해당시키며 心에 해당하는 불교와 함께, 理의 유가에 비해 열등한 이단사상이라고 규정한 것으로부터 출발했다. 老莊이라는 텍스트를 철학적 대상으로 삼아 재해석하고 분석했던 조선조의 모든 ‘주해’ 작업은 정도전이 『心氣理』편에서 성리학적 입장에서 내렸던 노장의 이단성에 대한 규정에 대한 긍정 혹은 부정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는 조선의 노장학이 그 출발점에서부터 송대의 성리학적 사유체계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실제로 조선의 노장 주석이 직·간접적으로 인용하고 있는 것은 송명시대의 노장 주석이 대부분이라는 사실도 이를 입증해주는 또 하나의 증거이다. 그런데 조선의 老子學에 비해 莊子學에 대한 연구는 아직 많지 않으며, 특히 동아시아에서 진행되고 있던 당시 莊子學의 맥락, 즉 송대 신유학적 사유체계에 기반한 장자 해석의 흐름 속에서 박세당과 한원진의 장자 주석에 관한 비교연구는 미비한 상태이다. 동아시아 사상사적 또는 지성사적 맥락 속에서 중국-한국-일본의 사상에 관한 비교검토를 거쳐 한국의 철학사상의 사상사적 특징과 의미를 파악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조선시대에 가장 많이 읽혔던 장자 주석이 南宋 林希逸의 『莊子鬳齋口義』와 박세당의 『南華經註解刪補』였다는 점에서 양자의 비교연구는 의미가 있다. 박세당 역시 林希逸의 주석을 많이 인용하고 있으며, 林希逸의 주석은 박세당의 주석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또한 장자를 긍정적으로 이해했던 박세당과 달리 비판적 시각으로 접근하고자 했던 한원진의 『莊子辨解』 역시 근본적으로 의거하고 있는 사유기반, 즉 『장자』를 바라보는 지평은 성리학적 세계관이었다. 한편 일본의 경우, 일본 주자학의 주요 인물인 하야시라잔(林羅山: 1583-1657)이 林希逸의 『장자권재구의』를 극찬하고 강조한 이래, 이후 고학파 등 주자학에 대한 반성과 비판이 일기 전까지, 에도시대 전반에 걸쳐 가장 영향력 있는 『장자』주석으로 입지를 굳혔다. 이들 송대 林希逸-조선 박세당·한원진-에도시대 하야시라잔의 장자학의 공통적 기반은 송대 신유학적 사유체계인데, 이러한 공통된 이해기반 위에서 이들의 『장자』 이해는 성리학 중심의 삼교소통의 가능성(syncretism) 혹은 주자학에 대한 이질성 인식이라는 맥락으로 전개되었고 있음을 비교검토했다. 즉 南宋과 에도시기 莊子學이 유교를 중심으로 한 유불도 삼교의 소통을 지향하는 데에 그쳤다면, 조선의 莊子學은 宋學的 사유체계 속에서 莊子의 형이상학 체계와 만날 수 있는 지점에 대해서 한층 정밀하고 심층적인 차원에서 성리학적 이론을 전개했다. 그 결과 박세당은 탈주자학적인 새로운 송학을 기획하고자 했다면, 한원진은 오히려 근본주의적 理氣論 구도 하에서 섣부른 유사성에 기인한 위험성(近似而非, 彌近而亂眞)을 천명하고자 장자와 주자학의 차별성을 명확히 했다.

Abstract

This paper aims to study Park Se-dang(1629~1703)’s Commentary and Han Weon-jin(1682~1751)’s Commentary of Zhuangzi, especially examining their philo- sophical theories and meanings in the history of East Asian studies on Zhuangzi. Song Confucianism(Neo-Confucianism, Xinglixue性理學) has been a horizon for most East Asian scholars to read the text of Zhuangzi, since 14 century. Lin Xiyi (1193? 1194?~?)’s commentary of Zhuangzi, Zhuangzijuanzhaikouyi, is the very one under- standing Zhuangzi in terms of Song Neo-Confuciansim. Lin inherited Northen Song Confucian’s Studies on Zhuangzi as well as Song Confucianism. This is the reason his commentary has ruled over the learned worlds of China, Japan, and Korea since 14 century. In particular, Hayash Lazan(1583~1657) in Edo period was fascinated with Lin’s commentary. Hayash assisted three Shoguns as the highest Confucian Official, and his devotion to Lin’s commentary had a direct influence on the academic world of Japan. This sort of effect did not declined until Ogyu Sorai(1666~1867) School criticized Lin’s commentary harshly in 17century. The principal context of Studies on Zhuangzi in the Song China and in the Edo Japan was a sort of syncretism to reconcile Confucianism, Daoism, and Buddhism in basis of Song Neo-Confucianism. On the other hand, it was theoretical development of Cheng-Zhu Confucianism that the context of Studies on Zhuangzi in the Chosun Korea inclined. Jeong Do- jeon(1342~1398) defined Daoism and Buddhism as heresies in his thesis “Mind- Energy-Principle”(Sim-Ki-Li), and considered the core concept Laozi and Zhuangzi as Energy(Qi, 氣). Jeong’s formulation has deep effect on Studies on Zhuangzi in the Chosun Korea, in two directions, that is, Park Se-dang’s Commentary, Namhwagyeong joohaesanbo, and Han Weon-jin’s Commentary, Jangjabyeonhae. They commonly realized disparateness between metaphysics of Zhuangzi and Cheng-Zhu Confucianism. However, Park used the heterogeneity escaping from Cheng-Zhu orthodoxy and planed to establish ‘new’ Neo-Confucianism in his commentary, while Han concentrated his efforts on discriminating between metaphysics of two philos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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