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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후반 조각승 勝浩 作 十王像 硏究

Study on the late 17th Century monk sculpture Seounho's the Ten King stat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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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명부전의 건립과 그 안에 봉안되는 존상의 조성 활동은 통해 당시 사회적인 상황을 반영한다. 17세기 전반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통해 많은 전몰자들이 발생했고, 중반 이후에는 小氷期로 촉발된 기상이변으로도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특히 1670-1671년 사이의 庚申大饑饉은 전국적으로 사망자가 100만이 넘을 정도로 피해가 극심하였다. 이 같은 사회적인 상황 속에서 현실보다는 내세적인 가치관이 강한 명부신앙이 유행했을 것이다. 17세기 후반 활동한 조각승 계보들은 지역적인 기반을 근거로 집중적으로 불사에 참여한 것이 여러 문헌을 통해 확인 가능하다. 승호는 경상남도 북부 및 경상북도 남부 일대의 사찰에 많은 불상들을 남겼다. 색난은 주로 전라남도와 경상남도의 해안에 가까운 사찰의 불사에 참여하였다. 단응 계보는 주로 경상북도 북부 일대 및 강원도 지역 사찰이 그들의 기반이었다. 이들 조각승 집단들은 지속적으로 시왕 불사에 참여함으로써 계보 고유의 상호, 복식, 관모 형태 및 자세들을 확립하였다. 현재까지 승호가 조성한 명부전 불상은 세 건이 조사되었다. 승호는 1678년 청도 덕사 명부전 불상(화악산 천주사 조성)을 시작으로 1681년에 昌原 聖住寺와 1684년에 機張 長安寺의 지장삼존과 시왕상을 제작하였다. 본 논문에서는 이 세 사찰의 명부전을 위해 제작된 승호의 조각승들을 중심으로 그의 작품세계를 살펴보았다. 이렇게 도출된 특징을 통하여 조선후기 제작연대를 알 수 없는 시왕상 가운데 승호와 그 계보 조각승이 제작한 시왕상을 추정하였다. 승호가 조성한 지장삼존과 시왕상에서 보이는 특징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승호 계보의 시왕상에서는 유사한 인상의 얼굴, 옷 주름의 형태가 기년명과 제작 시기를 알 수 없는 시왕상에서 공통적으로 보인다. 두터운 눈썹에 눈이 덮인 노년의 얼굴은 승호가 꾸준히 사용한 시왕 상호이다. 이 같은 모습의 시왕상은 승호 및 그 계보가 조성에 관여한 사찰들의 명부전에서는 예외 없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가슴에 두른 치마 상단을 ‘nnnn’와 같이 도식적으로 조각한 점과 광다회를 기준으로 좌우대칭으로 펼쳐진 치맛주름도 승호 특유의 옷주름 조각 방식이다. 또한 반가좌를 한 시왕상의 바지주름이 과장되어 부챗살처럼 펼쳐진 표현도 대부분의 사찰들에서 나타난다. 이러한 공통된 특징들 내에서도 시기상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승호의 기년명 존상들은 1678년에서 1684년 정도로 격차가 그리 크지 않은 시기에 조성되었기 때문에 양식적인 변천을 논의하기에 다소 무리가 있다. 하지만 1680년대 이후 시왕 관모의 형태에서 모란꽃이 주요한 장식 문양으로 사용된 점과 1678년에 보이지 않던 서수의 표현이 1680년대 기년명에서는 조각되었다는 사실은 짧은 시간적 격차 속에서도 변화의 양상이 발생했음을 입증해준다. 지금까지 제작시기가 밝혀진 시왕들을 토대로 전국에 봉안중인 승호계보 명부전 존상을 추적하였다. 승호 계보가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 명부전 존상은 의성 수정사, 고창 선운사 참당암, 경산 환성사, 울진 불영사, 밀양 표충사 등이다. 이들 명부전 존상의 지장삼존과 시왕상에서는 공통적으로 앞서 살펴보았던 특징들이 나타난다. 이를 근거로 승호 혹은 그 계보에 의해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17세기 명부전의 건립과 그 안에 봉안되는 존상의 조성 활동은 통해 당시 사회적인 상황을 반영한다. 17세기 전반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통해 많은 전몰자들이 발생했고, 중반 이후에는 小氷期로 촉발된 기상이변으로도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특히 1670-1671년 사이의 庚申大饑饉은 전국적으로 사망자가 100만이 넘을 정도로 피해가 극심하였다. 이 같은 사회적인 상황 속에서 현실보다는 내세적인 가치관이 강한 명부신앙이 유행했을 것이다. 17세기 후반 활동한 조각승 계보들은 지역적인 기반을 근거로 집중적으로 불사에 참여한 것이 여러 문헌을 통해 확인 가능하다. 승호는 경상남도 북부 및 경상북도 남부 일대의 사찰에 많은 불상들을 남겼다. 색난은 주로 전라남도와 경상남도의 해안에 가까운 사찰의 불사에 참여하였다. 단응 계보는 주로 경상북도 북부 일대 및 강원도 지역 사찰이 그들의 기반이었다. 이들 조각승 집단들은 지속적으로 시왕 불사에 참여함으로써 계보 고유의 상호, 복식, 관모 형태 및 자세들을 확립하였다. 현재까지 승호가 조성한 명부전 불상은 세 건이 조사되었다. 승호는 1678년 청도 덕사 명부전 불상(화악산 천주사 조성)을 시작으로 1681년에 昌原 聖住寺와 1684년에 機張 長安寺의 지장삼존과 시왕상을 제작하였다. 본 논문에서는 이 세 사찰의 명부전을 위해 제작된 승호의 조각승들을 중심으로 그의 작품세계를 살펴보았다. 이렇게 도출된 특징을 통하여 조선후기 제작연대를 알 수 없는 시왕상 가운데 승호와 그 계보 조각승이 제작한 시왕상을 추정하였다. 승호가 조성한 지장삼존과 시왕상에서 보이는 특징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승호 계보의 시왕상에서는 유사한 인상의 얼굴, 옷 주름의 형태가 기년명과 제작 시기를 알 수 없는 시왕상에서 공통적으로 보인다. 두터운 눈썹에 눈이 덮인 노년의 얼굴은 승호가 꾸준히 사용한 시왕 상호이다. 이 같은 모습의 시왕상은 승호 및 그 계보가 조성에 관여한 사찰들의 명부전에서는 예외 없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가슴에 두른 치마 상단을 ‘nnnn’와 같이 도식적으로 조각한 점과 광다회를 기준으로 좌우대칭으로 펼쳐진 치맛주름도 승호 특유의 옷주름 조각 방식이다. 또한 반가좌를 한 시왕상의 바지주름이 과장되어 부챗살처럼 펼쳐진 표현도 대부분의 사찰들에서 나타난다. 이러한 공통된 특징들 내에서도 시기상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승호의 기년명 존상들은 1678년에서 1684년 정도로 격차가 그리 크지 않은 시기에 조성되었기 때문에 양식적인 변천을 논의하기에 다소 무리가 있다. 하지만 1680년대 이후 시왕 관모의 형태에서 모란꽃이 주요한 장식 문양으로 사용된 점과 1678년에 보이지 않던 서수의 표현이 1680년대 기년명에서는 조각되었다는 사실은 짧은 시간적 격차 속에서도 변화의 양상이 발생했음을 입증해준다. 지금까지 제작시기가 밝혀진 시왕들을 토대로 전국에 봉안중인 승호계보 명부전 존상을 추적하였다. 승호 계보가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 명부전 존상은 의성 수정사, 고창 선운사 참당암, 경산 환성사, 울진 불영사, 밀양 표충사 등이다. 이들 명부전 존상의 지장삼존과 시왕상에서는 공통적으로 앞서 살펴보았던 특징들이 나타난다. 이를 근거로 승호 혹은 그 계보에 의해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Abstract

The activity of rendering Myunbujeon(冥府殿) sculptures reflects the 17th century's social environment. In the first half of the 17th century Joseon dynasty faced two invasions form Japan, called as Imjinwaeran(壬辰倭亂), and Manchu, Byeongjahoran(丙子胡亂). These two invasions brought out a huge amount of casualties. In addition, capricious climate change, which was stimulated by the little ice age in 17th century, often had agricultural productions decline sharply in the second half of the 17th century. Especially during 1670-1671 the effect of famine was catastrophic. According to the Annals of the Joseon Dynasty(朝鮮王朝實錄), a numbers of fatalities are over one million. Such social phenomena in which death was widespread all over the country, would made people deem after life and provide a suitable background for pervading belief of Ksitigarbha and the Ten kings. In the late 17thcentury, monks culpture schools seem to have their own domains. Seungho(勝浩)’s school’s domain was Gyeongsang(慶尙) province and Seakan(色難)’s territory was coast areas of the South Sea. Daneung(端應)’s area was the northern part of Gyeongsangdo. By participating in repeated sculpture creating projects within their territories, each monk sculptor school could develop own idiosyncratic features, such as the hat’s decoration patterns, a statue’s posture and the shape of robes. The three records, which indicated that Seungho was the main artists for Ksitigarbha and the Ten kings statues, have been found: Cheng-do Deoksa(德寺) in 1678, Changwon Seongjusa(聖住寺) in 1681 and Gijang Jangansa(長安寺) in 1684. Based on three temples’ the Ten kings sets, this study will present the distinct features of Seungho’ the Ten Kings. In addition, by using these features of Seungho’s the Ten Kings, I try to speculate other Seungho school’s the Ten Kings statues, all of which do not have any written documents for proving the artists names as well as the producing date. The statues of Ksitigarbha and the Ten Kings, rendered by Seungho School, display distinct features. The first Seungho school used a same face mask for one of the Ten King statues. The hallmark of this face mask is identified by a senior face, having a pair of thick eyebrows and a beard. This senior figure is found in every Seungho school’s the Ten Kings set. The second is a unique drapery pattern of the Ten Kings. As a judge of each hell court, every King wears official garments, which are consisted of several different layers of clothes. One of clothes is to cover the king upper waists. When Seungho school carved this garment’s pleats, they used a simple decorative pattern like ‘nnnn’ shape instead of creating delicately folded draperies. This plain manner for making pleats applied to Ten Kings thigh parts. We can find symmetrical creased draperies on every Ten Kings. In addition when the King sits on a cross leg position, a casting drapery appears to be a rib of fan. The third we can trace a transitional decorative motif on the Ten Kings hat. Seungho school’s the Ten King statues were created between 1678 and 1683. Although this 6 years term can be regarded as a relatively short period to conclude one artist’s stylistic originality, however, the ten kings’ hats display a distinctive changing ornamental motif. After 1680s a peony blossom became a central design pattern for hat. As long as the times go by, disposition of the usage of a flower subject for the King hat became more frequent. In addition inserting an animal figure underneath of the King only can be seen around 1680s works. These two features are the most significant shift from 1670s’ works and 1680s’. Based on these stylistic features of Seungho schools’ the Ten King statues, we can find other Seoungho schools works in different regions. Although there no written documents which can prove that dates, participated artists and patrons lists, have found, these works share Seoungho schools ten king stylistic features. We can find Seoungho school’s the Ten King sculptures in Uiseong Sujeongsa(水淨寺), Gyeongsan Hwanseongsa(環城寺), Gochang Chamdangam(懺堂庵), Uljin Buryeongsa(佛影寺), Miryang Pyochungsa(表忠寺).

참고문헌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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