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의 양식 특징과 조성 배경 - 통일신라기 五岳信仰과 관련하여
A Study on the Style and Religious Background of the Stone Seated Buddha Image on Gwanbong Peak of Mt. Palgong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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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경상북도 경산군 팔공산 정상에 위치한 관봉 석조여래좌상의 조성 시기를 양식고찰을 통해서 9세기 전반으로 추정하였다. 또한 手印의 고찰을 통해서 기존에 약기인의 여래좌상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항마촉지인의 여래좌상임을 밝혔다. 특히 불상이 팔공산의 정상에 조성된 배경에 대해서 면밀히 검토하였는데, 『三國史記』卷 32 祭祀條에 팔공산이 신라시대에 五岳의 하나로 국가에서 中祀로서 제사를 지내던 산임을 주목하여, 오악에 대한 전통의 山神 제사가 불교적 의례로 바뀌면서 조성된 불상으로 추정하였다. 이 점은 특히 우리나라에서 높은 山頂에 불상이 많이 조성되었던 신앙적 배경을 생각해 볼 수 있게 해 주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즉 전통적으로 산악제사를 지내던 제단이 있는 곳이 불교사원으로 흡수되면서 불상이 조상된 것인데, 이 점은 국가수호를 전통의 山神 제사에만 의존했던 것에서 불교의 확산과 더불어 부처의 위신력과 교화에 의해 국가안위를 빌게 되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전통은 경주 선도산 마애삼존불상의 예로 보건대, 五岳信仰 이전에 이미 삼국시대부터 시작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降魔觸地印 如來坐像이 山頂에 봉안되는 것은 통일신라 이후로, 부석사 내지는 석굴암 불상의 조성이 깊은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팔공산 관봉의 불상은 석굴암 본존상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으로 보이며, 더 나아가 머리 위에 보개를 표현함으로써 나름의 새로운 도상을 확립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관봉의 불상은 재래의 산악신앙 전통이 불교와 융합하는 원초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는 곳으로 생각되고, 그러한 전통이 일반인 마음속에 면면이 이어져 오다가 다시 현대에 와서 부활한 것으로 생각된다. 산악신앙은 治病과 祈雨, 용왕숭배 등 속성 면에서 주술적인 면을 많이 갖고 있는데, 이 점이 불교로 환원되어 현대에는 약사도량으로 부활한 것으로 보인다.
Abstract
This study dated the time at the first half of the 9th century when the stone seated Buddha image on Gwanbong Peak of Mt. Palgongsan in Gyeongsan-gun Gyeongsangbuk-do was made, inquiring into its style. Furthermore, this study showed that the Budda image is a seated Buddha image in the Bhumisparsa- mudra(降魔觸地印), unlike what was known as a Buddha image holding a small medicine bottle before. In particular, this study closely examined the background of the Buddhist image being located at the top of Mt. Palgongsan. Considering Mt. Palgongsan was one of the Five Great Mountains(五岳) where a class of national memorial ceremonies, Joongsa(中祀), was hold during the Silla Dynasty according to the article on memorial ceremonies(祭祀條) in volume 32 of the Chronicles of the Three States(『三國史記』), the Buddha image was assumed to be made when the traditional memorial ceremonies for the five holy mountains was changed into a Buddhist ritual. This is critical in examining the religious background of Buddhist images located on mountaintops in Korea. In other words, the Buddhist images were formed when the altars of memorial ceremonies for holy mountains were integrated into Buddhist temple sites, which means that as Buddhism widely spread, the national security was prayed for in Buddha's dignity and enlightenment, not only in the traditional memorial ceremonies for holy mountains. For example, Buddha Triads on a cliff at Mt. Seondosan in Gyeongju-si make it certain that the Buddhist tradition had already begun during the Three Kingdoms Period before worshipping the holy Five Great Mountains. However, the Buddha images of Buseoksa Temple or Seokguram Temple are considered to have had a profound influence on placing the seated Buddha images in the Bhumisparsa-mudra on mountaintops after the Unified Silla Period. Especially, it seems that the Buddha image on Gwanbong Peak of Mt. Palgongsan was strongly influenced by the main Buddha of Seokguram Temple and a kind of baldachin on the head established its own distinctive figure. Thus, it is assumed that the Buddha of Gwanbong Peak showed a blended basic figure of traditional mountain worshipping and Buddhism and revived a tradition the general public kept in mind at the present day. Mountain worship has a shamanistic aspect in curing, praying for rain, worshipping the dragon king of the sea, which returned to Buddhism and led to Buddhist ceremonies worshipping Medicine Buddha for curing illnes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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