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금고의 특성과 명문 고찰
A Study on the Characteristics and Inscriptions of the Buddhist Gong of Goryeo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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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우리나라의 금고는 703년 중국에서 번역된 『金剛明最勝王經』 권 3 「夢見金鼓懺悔品」을 조성 배경으로 하여 통일신라 9세기쯤 전래, 사용되었다고 추정된다. 禁口라는 명칭으로 출발한 금고는 점차 뒷면의 구연이 안으로 좁아지는 새로운 반자형의 금고가 고려시대에 들어와 제작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1형식 외에 고려시대의 금고는 뒷면의 구연이 더 확장되는 2형식과 앞, 뒤가 완전히 막혀 측면에 공명구가 뚫린 3형식으로 나누어진다. 이 형식에 따라 1형식은 반자라는 음기를 중심으로 2, 3형식은 금구, 금고라는 음기로 표기되었다. 지금까지 파악된 명문을 지닌 고려시대의 기년명, 간지명 금고 59점을 대상으로 명문을 조사한 결과 반자라는 표기가 34점으로 가장 많았으며 그 중에서 음식 반(飯)자를 사용한 ‘반자’의 용례가 19점으로서 13세기를 중심으로 크게 확대되었음을 볼 수 있다. 여기에 명칭을 표기하지 않은 금고도 11점이나 확인되어 외형에 따라 금고와 반자를 구별하여 사용한 것으로 파악되지만 당시에도 일부 용어 사용에 적지 않은 혼란이 있었음을 시사해 준다. 한편 고려시대의 금고는 측면부나 후면 구연부를 돌아가며 금고를 만든 날짜와 절 이름, 발원문과 제작자, 무게 등 금고의 제작과 관련된 명문을 기록한 경우가 많다. 이러한 명문을 분석하여 조성시기, 제작자의 신분은 크게 관장, 사장, 승장으로 구분이 가능하며 발원문의 시대적 추이와 불교 교리의 반영에 따른 변화 양상, 시납자의 신분과 신앙 결사 등을 밝혀볼 수 있었다. 그 가운데 임자명 안양사 반자(1252)의 명문을 통해 지리산에서 결성된 ‘安養社’란 신앙 결사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금고를 제작한 사실과 이 결사가 중앙 집권층과 지방 불교계가 참여한 화엄종계의 성격을 지녔다는 점을 밝혀볼 수 있었다. 나아가 금고에 기록된 제작자는 주조 장인의 신분이나 직위, 사회적 진출 문제 등 고려시대 장인사회의 일면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될 수 있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범종과 반자를 제작한 韓仲徐로서 일개 장인에서 출발하여 무산계의 別將同正으로 진출하는 한 장인의 활동 상황이 드러나게 되었다. 고려시대 금고는 단순히 소리 내는 도구로서 뿐 아니라 소속 사찰의 위치와 성격, 당시 불교 교리의 변화나 역사적 상황 등 고려 시대의 다양한 사회상을 반영해 주는 중요한 금석문 자료라는 점에서 보다 다각적인 규명이 필요할 것 같다. 나아가 고려 금고에 기록된 중량과 실제 무게, 금고가 지닌 명칭과 용도와의 연관성 등에 관해서도 추후 검토가 요구된다.
Abstract
It is presumed that the Korean Buddhist gong was introduced into Unified Silla in the 9th century with the background of "Suvarnabhāsa-sūtra". The Buddhist gongs started with the name Geumgoo(禁口) are divided into three types coming to Goryeo dynasty. The first type is a form in which the back side is narrowed inward, the second type is a form in which the back side is further expanded. The third type is a form in which the front and back are completely blocked and the resonator is opened on the side According to the inscriptions, the first type is called Banja(飯子), the second type is called Geumgoo, and the third type is called Geumgo. Among the 59 the Buddhist gongs with inscriptions including the produced year and the zodiac signs, there are 34 Buddhist gongs with inscriptions ‘Banja’, and 19 Buddhist gongs was engraved Ban meaning of food. Even Buddhist gong not bearing the name was confirmed at 11 points, suggesting that there was confusion in the use of the term at that time. In case of the Buddhist gongs of Goryeo dynasty, inscriptions including the producing year, the name of temple, prayer script and maker, and weight was engraved on the side or backside. According to the result of analyzing inscriptions, the status of the maker can be divided into the official craftsman, personal craftsman, monk craftsman. In addition the prayer scripts reflect the phases of the age and the change of the Buddhist doctrine. According to the inscriptions of the Buddhist gong of Anyangsa with the zidiac sign ‘Imja’, this Buddhist gong was the monumental works of the faith association ‘Anyanasa’ that was formed at Mt. Jirisan. It can be said that this association has the character of Huaen order participated by the central ruling class and the local Buddhist community. The manufacturer recorded on the Buddhist gong give an information about the status and position and advance into society of the craftsman of Goryeo dynansty. The inscriptions recorded on the Buddhist gong of the Goryeo period give an information on the character and the location of the temple, the change of the Buddhist doctrine, and the phases of the 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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