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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계보기록과 재산 상속 - 여계(女系) 가문의 상속권을 중심으로 -

Genealogical Records during the Period of Goryeo Dynasty and Women’s Right of Inherit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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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까지 균분상속이 관행적으로 유지되고 있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그러한 균분상속이 호적·족보·족도 등처럼 계보를 주로 기재하는 기록에 미친 영향이 무엇인지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실 균분상속은 양측적(兩側的) 친속인식(親屬認識)의 산물이기도 했지만 양측적 계보인식을 지속 가능케 한 물적 토대를 제공하는 기제이기도 했다. 따라서 균분상속과 양측적 친속제는 어느 한쪽이 약화되면 다른 쪽도 사회적 규정력을 잃고 마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위와 같은 문제의식 아래 필자는 계보기록이 균분상속의 관행과 일정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살피기 위해 고려 말의 호구자료나 족도(族圖)·세계도(世系圖)에 주목해보았다. 해당 자료들은 대개 고려 말에 작성되었던 자료들이 족보에 전재(轉載)되거나 원본 형태 그대로 특정 가문에 보관된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해당 자료들의 수록대상 가문과 소장가(所藏家)가 일치하지 않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남씨의 호구를 풍산 유씨가, 임씨의 호구를 문화 유씨가, 이씨의 호구를 유씨가 보관한 것이나 한씨가 작성한 세계도를 홍씨 가문이 소장한 사례가 그것인데, 부계사회가 고착화된 조선 후기의 관념에 따르면 완전히 남이나 다름없는 가문에서 타성붙이의 자료들을 보관한 셈이다. 그것은 아무래도 가문의 오래된 유래를 자랑하거나 조상의 손때 뭍은 자료를 보존하려는 목적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었지만 거기에 더하여 언젠가 있을 지도 모를 재산분쟁에 대비하려는 욕망에서 기인했다고 생각된다.

Abstract

The objective of this study is to investigate the impact of even distribution of inheritance on genealogical records and its preservation. Even distribution of inheritance was an outcome of the notion of bilateral kindred, and at the same time, a mechanism that provided material foundations to maintain such notion. The two were inseparable as the weakening of either one hurt the other’s power of social norm. Noting this, genealogical records in the late Goryeo dynasty were examined to find a correlation between genealogical records and even distribution of inheritance. The findings were as follows. Family registers at the time included a broad scope of families, even including ancestors of sons-in-law, and that listing on a family register did not necessarily indicate a state of cohabitation. More interesting is that, often, there was no blood relationship between the family listed on the register and the family that kept the register. Presumably, it is due to a close relationship between genealogical records and the practice of even distribution of inheritance. The reason for keeping another family’s register, which would have been deemed as strangers by the late Joseon dynasty when the idea of a patriarchical society set in, is probably not only for the purpose of taking pride in a long lineage of the family, but also for the desire of being prepared for a possible dispute over wealth distribution some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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