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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굿쟁이’ 이동영사 -유랑예인 연행과 시각적 근대의 매개-

Itinerant Film Exhibition Practices in the 1950’s South Korea -‘In-between-ness’ of the pre-modern entertainment and the visual moder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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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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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한국전쟁 이후부터 박정희 집권 초반까지 비도시 지역의 주요한 영화 소비 방식인 이동영사의 역사적 성격 규명과 사회문화적 의미를 분석하고 있다. 1950년대 중반은 국내적으로 전쟁 경험에 따른 반공 이념이 지배하는 가운데 세계사적으로 냉전의식에 기반을 둔 미국화가 진행된 시기이다. 한국영화 산업 측면에서 보았을 때, 동 시기는 한국 영화 제작 증가와 함께 상설극장의 개관 역시 증가한 시기이다. 하지만 상설극장은 지역에 따라 편차를 보이며 등장했으며 지역별 영화 상영과 관람 문화 역시 상이한 양상을 드러냈다. 도시와 달리 비도시 지역에서 인기를 누린 영화 상영 방식은 이동영사였다. 이동영사 흥행은 비도시 지역의 상설극장 부족과 다수 인구의 상존 그리고 절기(節氣)와 계절 변화에 순응하는 노동 특성에 따른 것이었다. 이동영사 활동은 전후 반공 세력의 주도와 미국의 대외 문화 전략에 힘입어 더욱 발전하였다. 흥미로운 사실은 비도시 지역 관객의 이동영사를 통한 영화 관람이 근대 이전 유랑예인 놀이 문화의 연장선에서 이뤄진 점이다. 근대 이전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 식민지 말기 사라진 유랑예인 문화가 1950년대 비도시 지역 관객의 영화 수용과 향유 방식에 변용되어 전승된 것이다. 비도시 지역 관객은 영화 상영과 관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영화 관람 장소를 지역민의 필요에 따라 전유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1960년대 새로운 국가 권력 등장은 비도시 지역민의 영화 관람 문화의 자율성을 획일화시켜갔다. 유랑예인 놀이는 민족을 앞세운 ‘전통’의 이름으로 박제화 되고, 영화는 ‘근대’의 이름으로 대중문화 전면에 배치된 것이다. 유랑예인 놀이는 문화 향유의 맥락에서 탈락되어 ‘한국성(Korean-ness)’을 강조한 문화영화 제작의 시각적 재료로 동원되어갔다. 국가 주도의 영화-국민국가 수립을 위한 일련의 제도적 장치는 비도시 지역 관객을 문화 향유 주체라기보다 근대 문화 교육 대상으로 자리매김하였다.

Abstract

This paper explores the historicity of itinerant film exhibition practices in rural areas during South Korea’s post-Korean era,spanning from the mid 1950s to the early 1960s. During the period the ideology of the Anti-Communism was the key to construct the structure of entire social system, while the Americanization proceed to build the relationship between South Korea and the USA through the film exhibition that was based on the structure of feeling such as solidarity, sympathy, and mutual understanding. Under the circumstance, the itinerant film exhibition flourished in small and medium-sized towns where movie theaters did not exist. The itinerant film exhibitions could be fit for the features of rural labors ruled by seasons, the change of weather and the existence of quite a few number of population in the rural before the beginning of the full-scale industrialization in the early 1960s. Interestingly, the itinerant film exhibition practices were greatly similar to the entertainment practices by the strolling players who traveled whole country and served amusement to the ordinary people with their talents in pre-modern Korean society. The audiences also named viewing films by the itinerant film exhibition as a ‘Gut’ which was the predominating practices in pre-modern Korean society. The itinerant film exhibition practices revealed their uniqueness by providing the local people with vernacular environments for interpreting the cinema-going experience in their cultural contexts. Therefore, the local people took the lead both the film showing and film viewing practices, which were quite a different film culture in urban areas. However, the close relation between the pastime practices of the wandering artistes and itinerant film exhibition practices bifurcated and segmented into two different ways in the name of ‘tradition’ and ‘modernization’ in the 1960s. It was more accelerated by the construction of ‘film-nation/state’, positioning films as an effective means of propaganda the ‘Korean-ness’ to the world, especially the W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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