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의 부역과 냉전 한국영화의 형성
Controversies of collaboration -Filmmakers and the Cold War Cine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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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기술 인력의 부역 문제와 관련해서 특히 주목할 것은 미군정의 통치와 한국전쟁이라는 열전의 효과다. 일제의 전체주의적 통치로부터 해방은 되었지만 미군정의 통치와 분단, 그리고 한국전쟁을 거치는 8년 동안, 한국에서 영화는 식민 말기와 마찬가지로 (준)전시상태에 놓여 있었다. 생산수단의 국가 장악, 전쟁수행을 위한 도구로서의 영화의 위치, 제작 산업의 극도의 부진 같은 조건들이 지속되면서 전시 뉴스릴과 다큐멘터리를 생산하는데 필수적인 인력이었던 기술자들을 중심으로 한, 동질적인 역사적 경험을 가진 소규모 집단이라는 영화계의 성격은 유지되었다. 변화가 시작된 것은 전후에 한국영화가 구조적 변동을 겪게 되면서부터다. 1950년대 후반 동안, 미국의 원조에 힘입은 영화제작의 물적 토대 구축과 자원의 분배에 따른 극영화 제작산업의 활성화, 이질적인 경험을 가진 신규 인력들의 영화계 유입, 직능별 분화와 조직화, 미국식 기술표준과 산업적 표준이 부상하는데 따른 세대교체 등의 변화가 한꺼번에 진행되었다. 이러한 변화들은 한국전쟁이라는 열전이 중단되고 남북한이 적대적 공존상태로 전환하는데 따른 영화계의 구조적 변동의 일부였다. 이형표의 부역 전력 발고 사건은 그와 같은 구조적 변동이 시작되는 시점에 위치하는 것으로, 냉전 한국영화가 또 다른 국면에 접어들고 있음을 앞서 보여주었다. 이는 영화계 내부로 본다면 인력의 세대교체가 시작되었음을 의미하지만, 보다 큰 역사적 맥락에서는 한국영화가 식민지문화로부터 냉전문화의 일부로 이행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 글에서는 해방직후부터 한국전쟁기, 그리고 1950년대 후반을 거치면서 한국영화가 냉전적 구조를 획득해가는 과정을, 부역 문제를 포함한 영화인들의 동향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Abstract
The primary focus of this paper is the effects of the USAMGIK occupation and the Korean War on the collaboration of Korean film technicians. Korea under American occupation from 1945 to 1948 marks the departure from the Japanese totalitarian rule. But this occupation period brought back to Korean cinema the system of control similar to the late-colonial wartime mobilization. The state control of film production faculties, the utility of cinema for war operation, and the overall underdevelopment of film production continued. Concurrently, the film industry witnessed the rise of a group of film technicians indispensable for producing newsreels and documentaries. They also shared a strong sense of bond and historical experiences. A significant change occurred as the Korean film industry underwent a structural transformation after the Korean War. From the late 1950s onward, the various types of assistance and aid from the US into Korea triggered a series of seismic changes in the Korean film industry. They include the provision of filmmaking infrastructure and facilities and film production resources. These changes, in turn, facilitated the steady production of commercial narrative films, specialization, professionalization, and division of filmmaking techniques, as well as the rise of American film standards and their application in Korean filmmaking practice. Most of all, they brought the generational change, which also paralleled the historical shift from the postwar state of emergency to the prolonged condition of the Cold War contention. In this context, the accusation brought on by Yi Pil-u and his cohorts against the Yi Hyongpyo marks a historical significance. It ties to the issues of the generational change of film technicians. It also relates to the authoritarian politics where rumors on the pro-communist collaboration functioned as a source of the Cold War cultural mobilization. In short, the controversies of pro-communist collaboration serve as the marker that illustrates the historical change in the Korean film industry: from the colonial model of film practice to the new Cold War cultural politics and its practice. This paper aspires to illuminate the advent of the Cold War cinema production through specific cases of the pro-communist collabo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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