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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기 만민/관민공동회(1898년)를 둘러싼 국왕과 독립협회의 갈등 - ‘동포,’ ‘민회’ 개념을 중심으로

Political Conflict on the Convention of 10 Thousand People(1898) in the Daehan Emp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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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사회학

초록

이 논문의 목적은 1898년 만민/관민공동회라는 정치·사회적 사건이 진행되는과정에서 행위의 정당성을 놓고 어떠한 개념적 경합 또는 변화가 일어났는지 분석하는 것이다. 정치적 대립과 개념의 상관성에 주목하여, 행위자들이 ‘동포’, ‘민회’ 등의 개념을 어떤 의미로 사용하여 자신들의 입장을 정당화하려 했는지 살펴본다. 만민공동회는 토론회와 연설회라는 새로운 근대적 집회 양식에 기초하고 있지만초기부터 내적 논리의 측면에서는 유교적 공론정치에 기초한 충성의 논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독립협회는 ‘동포’라는 개념에 담긴 의미에 변화를 주면서자신의 생활세계를 넘어선 정치적 영역에 대한 무관심이 당연시되던 민을 ‘공론’의형성자로 호명하여 정치화했다. 또한 공론정치라는 과거 관행은 고종과 만민공동회 사이의 갈등이 고조되었을 때, 만민공동회가 자신들의 집합행동을 정당화하는일종의 보호막으로 작용했다. 이를 근거로 정치적 탄압의 명분을 줄이면서 자신들의 정치적 요구를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가 허용되는 정치적 공간은 제한적이었다. 고종을 비롯한 조정의 신료들은 ‘군부론’이라는 충성의논리 속에서 민을 보살펴야 하는 어린 아이와 같은 존재로 보았으며, 이들이 민회를 이루고 정치화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따라서 독립협회와 만민/관민공동회가 공론을 전하는 신하로서의 역할에서 벗어난다고 판단하자 이를 해산시키게 된다.

Abstract

This paper aims to analyze the political collisions around the legitimacy of the Convention of 10 Thousand People. Using the method of conceptual history, I focus on different ways in which actors employed 'brotherhood,' 'people's assembly' to justify their own stance. The Independent Club attempted to politicize apolitical protest participants by calling them as 'brotherhood.' The club also argued that the establishment of 'people's assembly' inherited the tradition of the Confucian politics of public opinion. In contrast, the King Kojong attempted to make a case against it by resorting to the logic of all people's Lord and Father: for him, people's assembly could not be a case of the Confucian politics of public opinion. As the conflict escalated, Kojong made an order to dissolute the assemb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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