六溪土城의 調査ㆍ硏究成果와 歷史的 價値
Investigation & Research Results and Historical Value of Yukgye Earthen Fort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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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글은 육계토성의 고고학적 성과를 지표조사와 발굴조사 등으로 나누어 정리한 후조선시대 문헌과 일제강점기 전후 근대 지도류 등의 검토를 통해 육계토성의 현황 및 구조 그리고 역사적 가치를 살펴본 것이다. 육계토성의 자연환경은 사행하천의 하안 충적대지, 추가령 구조곡을 따라 형성된 단애, 지류하천의 유입에 따른 나루와 여울의 발달, 남쪽의 감악산, 파평산 등 산간지대와북류하는 지류하천 등으로 요약된다. 이러한 천혜의 환경은 육계토성과 그 주변에 많은성곽유적을 잉태하는 원인으로 작용하였다고 여겨진다. 육계토성에 관한 조선시대 문헌은 1658년 미수 허목의 「記行戊戌舟行記」에 ‘六溪 古壘’라고 언급된 이후 『積城縣邑誌』 에서 ‘六溪土城’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1914년 지형도에서는 ‘六溪土城址’, 1915 년 국유림 경계도에는 ‘六溪城’으로 표기하고 있다. 성의 구조는 성의 구조는 내성, 외성, 자성의 3중 성곽의 평면을 보여주고 있다. 다음으로 그 역사적 가치를 보면, 육계토성은 성의 출현과 발전단계를 응축하고 있으며 평지 토성과 산지 석성의 갈래를 제공하고 있다. 현재 배후의 칠중성 역시 이 시기를거치면서 토축성에서 석축성으로 변화하였으며 이전 7세기 중반까지도 육계토성과 마찬가지로 여러 겹의 토성 즉 重城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三國史記』에 나타난, 638년10월과 동년 11월에 벌어진 고구려의 칠중성 침입, 신라 알천의 활약, 660년 11월에 고구려의 칠중성 공격과 군주 필부 전사 등의 사건은 여러 겹의 土城에서 벌어졌다고 하겠다. 이외 임진강 변의 토심석축 혹은 석축성으로 알려진 호로고루, 당포성, 은대리성, 덕진산성 등도 이 시기까지는 토성의 景觀이 자연스럽지 않을까 한다. 또한 국내 유일의 3중 평지성으로 임진강 유역 백제 한성기의 최대 거점성에 해당된다. 그리고 남한내 최고의 고구려계 유구와 유물이 발굴되었으며 이후 호로고루와 당포성, 은대리성, 아미성, 두루봉보루, 태봉산보루 등을 위시하는 관방체계를 구축하게 된다. 즉 육계토성+칠중성+감악산=평지성+산성+고험처의 조합관계는 임진강유역의 고대 관방체계를 형성하는 모태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육계토성의 연구사적 검토를 통해 토성의 평면 구조를 파악해 보았는데 이는 향후 시기별 변천과정을 고찰하는데 하나의 기준을 제공하였다고 생각한다. 앞으로여울, 단애, 토루 등 자연 지형과 인공 구조물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이해를 가지고 성곽에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Abstract
This article summarizes the archaeological achievements of Yukgye Earthen Fortress through surface surveys and excavation surveys. Then, it examines the current status, structure, and historical value of Yukgye Earthen Fortress by reviewing documents in the Joseon Dynasty and modern maps before and after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The natural environment of Yukgye Earthen Fortress consists of the alluvial plateau on the riverbank of meandering rivers, the cliffs formed along the Chugaryeong Tectonic Valley, the development of rapids due to the inflow of tributary streams, mountainous areas such as Mt. Gamak and Mt. Papyeong in the south, and tributary rivers flowing to the north. It is believed that such a blessed environment acted as the cause of the formation of Yukgye Earthen Fortress and many fortress relics around it. In the Joseon Dynasty literature on Yukgye Earthen Fortress, the name Yukgye Toseong(六溪土城, meaning Yukgye Earthen Fortress) was used in the Jeokseonghyeon Eupji(積城縣邑誌, Journal of Jeokseong-hyeon) after it was mentioned in Gihaeng Musul Juhaenggi(記行戊戌舟行記) as Yukgye Goru(drum tower) by Misu Heo Mok in 1658. In a topographical map of 1914, "Yukgye Toseongji(六溪土城址, meaning the site of Yukgye Earthen Fortress)" was indicated. It was indicated as Yukgye Seong(六溪城 meaning Yukgye Castle) in a national forest boundary map of 1915. The fortress structure shows the three-layered plane: inner, outer, and baby castles. Next, looking at its historical value, Yukgye Earthen Fortress condenses the appearance and development stages of the fortress and provides a junction point of earthen fortresses on flat ground and mountainous stone fortresses. Chiljung Fortress(Chiljungseong) at the rear also changed from an earthen fortress to a stone fortress during this period. Until the middle of the 7th century, Chiljung Fortress was a multi-layered earthen fortress. It was a double-layered fortress, like YukgyeEarthen Fortress. For example, in the Samguk Sagi(三國史記, History of the Three Kingdoms), Goguryeo's invasion of Chiljung Fortress in October and November of the same year, brilliant performances of Alcheon of Silla Kingdom, and Goguryeo's attack on Chiljungseong in November 660, and deaths of King and the ordinary people during the war occurred in theearthen fortresses with several layers. In addition, Horo Goru, known for stone structure with earthen axis along the Imjin River or stone fortress, Dangpo Fortress, Eundaeri Fortress, and Deokjin Mountain Fortress, also assumed to have natural structures of the earthen structure until this time. In addition, as the only triple flat castle in Korea, Yukgye Earthen Fortress was the largest base fortress in the Baekje Hanseong Period in the Imjin River Basin. The best Goguryeo relics and relics in South Korea were excavated there. After that, a military defense system was established centered on Horogoru, Dangpo Fortress, Eundaeri Fortress, Ami Fortress, Durubong Fortress, and Taebongsan Fortress. In other words, the combination relationship of Yukgye Earthen Fortress + Chiljung Fortress + Mt. Gamak = flatland fortress + mountain fortress + high and stiff mountain was the basis for forming the ancient military defense system in the Imjin River basin. So far, this study has tried to figure out the plane structure of the earthen fortress through the historical review of Yukgye Earthen Fortress. It provides a standard for examining the change process by period in the future. It is considered necessary to approach the fortresses with diverse perspectives with comprehension of natural topography and artificial structures such as rapids, cliffs, and mounds in the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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