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천도교 신파의 ‘민족 자치’ 구상
Self-governing Plan by Choson Nation of the Chundogyo's New faction in the 192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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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논문은 1920년대 천도교 신파에서 전개한 자치운동을 천도교 종교논리와 관련해 검토하였다. 천도교인의 대부분과 실질적으로 천도교단의 주도권을 장악한 신파세력은 일제와 타협‧협력하는 가운데 청년당을 통한 천도교 중심의 독자적인 활동을 중시하였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자치운동을 추진하였다. 천도교 신파세력이 1920년대 중반 이후 이러한 활동을 전개한 것은 그들의 민족 인식과 관련이 있다. 천도교 지도자들은 민족주의를 ‘利己主義의 大結晶’으로 보았으며, 민족과 민족을 대립케 하는 원인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따라서 천도교세력은 기존의 민족주의를 대신한 ‘汎人間的 民族主義’를 주장하였다. 따라서 당시의 제국주의 질서와 ‘민족국가’ 단위의 세계질서를 비판하면서 ‘世界一家主義’를 주장하였다. 세계평화의 완성을 위해서는 민족주의를 넘어선 국제주의와 인류주의적 관점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었다. 하지만 당장 이 관점에서 민족문제를 해결하자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世界一家’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각 민족이 세계에 통할만한 지식‧도덕‧사상 등을 지녀야 했기 때문에 민족의 생활정도와 문화를 향상‧발전시키는 위한 民族開闢이 우선 과제였다. 이러한 인식하에 ‘朝鮮民族 自治’가 합리화되었다. 조선민족이 당면한 현실을 무시하고 일본민족과 조선민족을 동일하게 취급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즉 세계일가라는 궁극적 목표가 전제되었지만 그 단계적 발전과정과 당시 한국사회의 조건이 고려되면서 세계일가에 참여하기 위한 당면한 현실 목표로서 일본의 통치 아래에서의 ‘조선민족 자치’가 설정된 것이었다. 천도교 신파세력이 구상한 ‘조선민족 자치’의 구체적 실현 형태는 영국과 캐나다, 호주 등 영연방 국가들 간의 관계였다. ‘연방국가’는 ‘세계일가’, ‘世界聯邦’으로 나가는 과도기였다. 천도교 신파세력은 이와 같은 방식을 통해 조선과 일본의 ‘분리’를 추구한 것이었다. 따라서 ‘조선민족 자치’는 천도교 고유의 종교적 목표인 ‘세계일가’를 향해 가는 주체적 실천과정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세계보편을 지향하는 종교논리와 민족본위가 국가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는 정치논리가 상호 결합된 것이었다.
Abstract
The majority of Chundogyo (天道敎) followers and the new faction (新派), who held a substantial initiative over the Chundogyo church, stressed its own activities through the Youth party (靑年黨)and opted for cooperation and collaboration with Japanese Imperialism. The Self-governing Movement (自治運動) was promoted on the basis of its own beliefs. The new faction perceived that nationalism was the crystallization of egoism and a principal factor of conflicts between nations. Thus,the Chundogyo group asserted the idea of Pan-humankind Nationalism (汎人間的 民族主義) as an alternative form of nationalism. The Chundogyo group, therefore, asserted a concept of unity of all the states (世界一家主義). It also criticized the nation states throughout the world and an omnipresent imperial world order. The perspectives of universal humankind and cosmopolitanism were the necessary conditions in order to overcome nationalism and to achieve world peace. Dissemination of the common knowledge and ideas of morality throughout each national group considered the completion of Segyeilga (世界一家). Improving the nation's standard of living andmore developed cultural aspects would only be achieved by implementing Minjokgaebyuk (民族開闢) as a priority. The leaders of the group adopted the perception of Minjokgaebyuk and Self-governing by the Choson Nation (朝鮮民族 自治). When the ultimate goal, Segyeilga, determined as the premise, was considered a precondition of Korean society and the belief in a phased developmental course at that time, it was a feasible alternative action under Japanese occupation. The conception of Self-governing by the Choson Nation (朝鮮民族自治) was mapped out according to the British Commonwealth model,which included Great Britain, Canada, and Australia. The Commonwealth was regarded a transitional period to achieve Segyeilga and Minjokgaebyuk as a final stage. It was an attempt by the new faction to separate Choson and Japan. Self-government by the Choson Nation was a process of independent practice in order to fulfill the inherent religious purpose of Segyeilga. In addition, the concept was the combination of religious reasoning on the base of the orientation of cosmopolitan universalism and a part of political beliefs that the existence of state was not a precondition of the n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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