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무(巫)의 종교적 역할과 분화
A Study on the Shaman's Religious Roles and Functional Differentiations during Goryo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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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巫’는 다양한 용례가 있지만, ‘무당’ 호칭은 別祈恩祭에 참여하는 京中 및 畿內各處의 國巫堂ㆍ巫堂內 巫女를 가리키는 속어에서 나왔으며 공식적으로는 ‘國巫’ㆍ‘巫女’로 표현되었다. ‘巫’는 司祭로서의 역할에 따라 私巫ㆍ神祠의 堂巫ㆍ別祈恩의 國巫로 구분되며, 모시는 神格은 靈怪ㆍ大王神ㆍ城隍神에서 佛道계열의 外來神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였으나 天上과 人間을 오가는 靈媒로서의 巫의 역할은 동일하였다. 기왕의 國祭에도 불구하고 別祈恩祭가 등장한 것은 무신정변 이후 새로운 禳災의 필요성과 司祭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정형화된 의례에 나타나는 각 거리의 神格은 歌舞祀神의 과정을 통해서 표현되며, 『時用鄕樂譜』에 수록된 俗樂歌詞들은 공동체적 除厄求福과 관련된 神格을 대상으로 한 敍事巫歌의 흔적을 보여준다. 다만 어느 경우에나 神語는 神이 巫의 몸에 내린 것(憑)을 전제로 神格의 성격이라든가 神格들 사이의 관계를 드러낸다. 禳災를 위한 國行의례로 이어진 祈禱는 순수한 巫儀와는 구별되는 주술적 효과를 기대한 것으로 여말 지방의 曝巫의례로 이어졌다. 呪詛의 요체는 높여 기원(唯在宗祈)하는데 있으며, 厭勝과 解厄의 과정에서 番僧ㆍ道士ㆍ術僧이 등장하였다. 그러나 占卜은 주술의 힘을 빌려 추리하거나 판단하되 巫的 화해를 통한 治病의 효과를 기대한 측면이 있다. 한편 인종조 이후 私巫의 영향력은 확대되고 있었으나 淫祀에 대한 통제는 神祗에 대한 尊號와 마찬가지로 禮的 秩序觀을 보여준다. 또한 이를테면 錦城山神이 封號 내지는 경제적 보상을 요구한 것은 스스로 독자성을 잃고 국왕중심의 질서체제로 편입하고자 한 것으로 堂巫 역할의 직능화, 세속화를 반영한 것이다. 나아가 ‘呪人巫女’ㆍ‘盲人巫女’ㆍ‘賣卜盲人’의 등장은 巫業의 기능적 수요를 보여주는가 하면, ‘盲人巫師’는 經師로 이어지는 과도기적 존재로서 도교적 신령체계가 영향을 주고 있었음을 나타낸다. 또한 ‘巫覡戱’ 등 歌舞의 戱化현상은 민간의 풍습을 모방한 것으로 祀神과는 상관이 없는 비종교의 새로운 영역이 형성되었음을 나타낸 것이라 하겠다.
Abstract
After tracing the origin of 'Mudang(Korean Shaman)', I made efforts to identify the shaman's religious roles and it's shamanistic elements. And then I tried to establish both the social controls for the shaman's activities such as rituals and the functional divisions from them during Goryo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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