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하 고등문관시험 출신 조선인 판·검사의 사회경제적 배경
日帝下高等文官試験出身朝鮮人判事、検事の社会経済的背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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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일제하 고등문관시험(이하 고문으로 줄임) 사법과에 합격하여 조선총독부의 판사, 검사로 임용된 조선인의 대략적인 인원과 임용과정, 그리고 이들의 사회경제적 배경을 조선총독부 법무국의 「사법관시보진퇴서류」등의 자료를 이용하여 연구한 것이다. 일제하 고문은 1923년부터 1943년까지 실시된 고등관 자격시험으로, 사법과에 합격한 조선인은 최소 273명이었다. 이 가운데 조선총독부의 판사, 검사로 임용된 조선인은 97명이었다. 이들의 연대별 임용추이를 살펴보면, 1920년대는 고문 합격자 총 9명 중에 5명, 1930년대는 총 93명 중 55명이, 1940년대는 최소 170명 중 37명이 임용되었다. 전체적으로 고문 초기 합격자 즉 1920년대와 1930년대 합격자는 ‘유자격자’의 희소성에 때문에 자신이 원할 경우 대부분 총독부 판·검사로 임용되었다. 그런데 1904년대 조선인 고문 합격자가 급증하면서 판·검사가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이 시기에는 사법관시보의 채용을 둘러싸고 치열한 경쟁이 전개되었고, 자의든 타의든 판·검사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래서 고문 출신들 가운데 상당수가 변호사 등으로 진출하였다. 고문 출신 조선인 판·검사의 사회적 배경으로는 출신학교와 지역을 정리하였다. 먼저 이들의 출신학교를 분석한 결과 제국대학 및 관립대학 출신자들이 54명이고, 사립대학 출신자들이 43명이다. 제국대학 및 관립대학 출신자 중에서는 경성제대 출신들이 22명으로 가장 많았다. 사립대의 경우는 일본 중앙대학이 20명으로 가장 많았다. 출신학교를 국내파와 국외파로 나누면 각각 36명과 61명인데, 국외파는 모두 일본 유학생들이었다. 또 이들의 출신지역은 평안도 출신이 26명으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전라도 18명, 경상도 18명, 서울·경기 16명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들 평안도 출신들은 해방 이후 월남하여 법조계의 재편과정에서 여러모로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고문 출신 조선인 판·검사 부모(후원자)의 직업 및 자산규모 등을 분석하여 경제적 배경을 알아보았다. 이들 대부분은 제국대학과 일본 유학생들이었기 때문에, 학교교육과 유학이 가능하게 된 배경을 찾아보기 위해서이다. 우선 직업면에서 보면 농업(지주)과 상공업이 각각 40(11)명과 6명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는 변호사, 의사, 사법서사, 조합서기 등 전문직이 10명, 귀족 2명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종래의 지주계층(양반)과 韓末 이래 부상한 상공업자 그리고 관리 출신의 전문직 종사자가 대부분이었다. 이어서 자산 보유상황을 보면 1만 원이하 20명, 1~5만 원 24명, 5~10만 원 6명, 10~30만원 11명, 1백만 원 이상 1명, 1천만 원 이상 3명 등의 분포로 정리되었다. 또 이들의 자산 평균은 최고액층과 최저액층을 제외하면 약 3만 3천 원이었다. 당시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감안할 때 자산 평균액이 상당함을 알 수 있다. 자산 규모의 이러한 통계는 이들이 몇몇을 제외하고는 적어도 지역유지로 중상류층에 속했다는 것을 말해 준다.
Abstract
本稿は、日帝下高等文官試験(以下高文)司法科に合格して、朝鮮総督府の判事、検事に任用された朝鮮人の概略的な人員と任用過程、そしてこれらの社会経済的な背景を朝鮮総督府の法務局の 「司法官試補進退書類」などの資料を利用して研究したものである。日帝下高文は、1923年から1943年まで実施された高等官の資格試験で、司法科に合格した朝鮮人は最小273人であった。 このうち、朝鮮総督府の判事、検事として任用された朝鮮人は97人であった。 これら年代別の任用推移を調べると、1920年代は高文合格者計9人のうち5人、1930年代は計93人のうち55人が、1940年代は最小170人のうち37人が任用された。全体的に高文の初期合格者すなわち1920年代と1930年代の合格者は 「有資格者」が希少性であるために、自身が希望する場合は大部分が総督府判・検事として任用された。 しかし、1904年代朝鮮人高文の合格者が急増しながら判・検事になるということは容易なことではなかった。 結局、この時期には司法官試補の採用をめぐって激しい競争が展開され、自らの意向であろうと他意であろうと判・検事をあきらめる人々が増えた。 それで高文出身のうち相当数が弁護士などに進出した。高文出身の朝鮮人判・検事の社会的背景としては、出身学校と地域を整理した。 まず、これらの出身学校を分析した結果、帝国大学および官立大学の出身者などが54人で、私立大学の出身者などが43人である。 帝国大学および官立大学の出身者のうち京城帝大の出身が22人で最も多かった。 私立大の場合は、日本中央大学が20人で最も多かった。 出身学校を国内派と国外派で分ければ、各々36人と61人であるが、国外派はすべて日本の留学生であった。 また、これらの出身地域は平安道(ピョンアンド)の出身が26人で最も多く、次に全羅道(チョルラド)18人、慶尚道(キョンサンド)18人、ソウル京畿(キョンギ)16人などの順となる。 これら平安道(ピョンアンド)の出身は、解放以降に38度線を越えて法曹界の再編過程で色々な面で少なくない影響を及ぼしたものと思われる。次に、高文出身の朝鮮人判・検事の両親(後援者)の職業および資産規模などを分析して経済的背景を調べてみた。 これら大部分は、帝国大学と日本留学生であったため、学校教育と留学が可能になった背景を調べるためである。 まず、職業面で見ると、農業(地主)と商工業が各々40(11)名と6人で最も多かった。 次に弁護士、医師、司法書士、組合書記などの専門職が10人、貴族2人であった。 したがって、これらは従来の地主階層(両班)と韓末以来浮上した商工業者そして官吏出身の専門職の従事者が大部分であった。 続いて、資産保有状況を見ると、1万円以下20人、1~5万円24人、5~10万円6人、10~30万円11人、百万円以上1人、1千万円以上3人などの分布で整理された。 また、これらの資産平均は最高額層と最低額層を除けば約3万3千円であった。当時の植民地朝鮮の現実を勘案する時、資産平均額に相当するということが分かる。 資産規模のこのような統計は、これらが何人を除いては少なくとも地域有志で中上流層に属していたと言え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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