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羅 眞德王代 唐制의 受容과 체제정비
新羅眞德王代唐制の受容と體制整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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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金春秋는 대외적으로 고구려․백제의 압박에서 벗어나고, 대내적으로는 毗曇 등 舊 귀족세력을 제압하기 위한 의도에서 對唐 外交를 전개하였다. 使行路는 慶州에서 竹嶺․鳥嶺을 지나 당항성에서 登州와 長安으로 이어지는 행로를 택한 것으로 생각되며, 入唐 후에는 唐 태종과 휘하 諸 인물들과 교류하며 羅唐同盟을 체결하고 군사적 협력까지 이끌어냈다. 이후 신라는 나당 동맹관계를 바탕으로 唐制가 시행되었다. 中朝衣冠의 도입, 牙笏규정의 정비 등으로 國王을 정점으로 하는 一元的 관료체제가 보다 강화되어 갔다. 法興王代 반포된 율령이 진덕왕대 재정비되어 양적 확대에 더하여 질적인 변화도 이루어졌다. 특히 半臂 규정, 9誓幢의 색복 규정은 단순한 의복 차원의 규제를 넘어 신분제의 주요한 축으로 기능하였다. 또한 太平頌을 제작하고 永徽 年號를 사용한 것은 단순한 事大가 아니라 형식적 의례를 통하여 급변하는 대외정세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실리주의 외교였다. 그리고 賀正禮 시행, 執事部 등 관부 개편을 통해 김춘추 세력은 자신들의 기반을 강화하였다. 각 관부의 장관은 令·卿의 호칭을 채용하였는데, 형식적 의례를 통한 신축적이고 외교의 전개였다. 理方府의 정비와 侍衛府의 개편 또한 김춘추 세력의 정치적 입지에 더하여 군사적 기반의 강화조치였다. 이러한 진덕왕대 唐制의 수용은 김춘추 세력의 집권과정인 동시에 신라 中代 개창의 계기였다. 唐制 수용이 가지는 근본적 의미는 법흥왕대 체제 정비와 비교할 때 보다 분명해진다. 법흥왕대 반포된 율령은 중국적 질서를 수용한 것이지만, 고구려 등을 통한 對중국 간접 교역으로 선진문물의 수용에 있어 수준과 내용이 미달하는 제한적 성격이었다. 반면에 진덕왕대 중국 문물의 직접 도입과 이에 따른 조치들은 그러한 한계를 극복한 신라의 자주적 행보였으며, 이로 인해 선진 문물 도입은 물론 삼국 통일까지 달성하는 토대가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덕왕대 김춘추 일행의 對唐 使行이 갖는 진정한 역사적 의미라 하겠다.
Abstract
以上に 真徳王代 唐制の受容に対して考察したし, 受容過程において 金春秋・金庾信勢力の政治的意図が密接するように関連になっていることをよく見られた. 考察内容を要約して結語に代わりをしようとする. 金春秋は対外的に高句麗· 百済の圧迫から脱して, 対内的では 毗曇など旧貴族勢力を制圧するための意図で対唐使行した. この時 使行路は慶州で竹嶺· 鳥嶺を経って唐項城で登州と 長安につながる行路を択した. 入唐後 唐太宗及び彼の側近らと交流した 金春秋は羅唐間に同盟関係を締結と軍事的協力まで導き出した. 羅唐同盟関係を土台で唐の多くの制度が施行になった. 中朝衣冠の導入, 牙笏規程の整備などを通じて新羅で国王を頂点にする一元的官僚体制行って見る 強化になって行ったし, 法興王代 頒布になった 律令が 真徳王代 再整備になることで 量的である 拡大とともに 質的である 変化も成り立った. 特に 半臂規定, 九誓幢の色服規程は単純な 衣服次元の規制を越して 身分制の主な 軸で機能した. また太平頌を製作と永徽年号を使用したことは単純な 事大ではなく 形式的儀礼を通じて 急変する対外政勢に 積極的に 対応した実利主義 外交政策の小産だった. そして 賀正礼の施行, 執事部等 官府の改編を通じて金春秋勢力は自身らの基盤を強化した. この時 各 官府の長官は令· 卿の互称を採用したが, これまた形式的儀礼を通じる 伸縮的で 実利的である外交の展開だった. また 理方府の整備と侍衛府の改編を通じて金春秋勢力は政治的立地に加えて 勿論 軍事的 基盤まで 強化できた. 結局 真徳王代 唐制の受容は金春秋勢力の執權化過程の一部だったしこれを土台で 新羅中代 開倉の足場が用意された 契機だった. そして 唐制受容が持つ根本的意味は法興王代 体制整備と比較割時見る分明切れる. 法興王代頒布になった律令は中国的秩序を受容したことだが, 高句麗等を通じる対中国間接交易で先進文物の受容において水準と内容が未逹する制限的性格だった. 反面に真徳王代中国文物の直接導入とこれによる措置らはそういう限界を克復した新羅の自主的行歩であったし, 先進文物導入に成功して体制整備は 勿論 三国統一まで逹成する 土台になったのだ. これがちょうど真徳王代 金春秋一行の対唐使行が持つ歴史的意味だとす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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