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백이 수용의 한 양상 —연암 박지원의 <백이론> 상하 다시 읽기—
An Aspect of Boyi Acception in the Late Joseon Dynasty - rereading of Boyiron(two volumes) of Yeonam Park Jiwon -
0
조회
0
다운로드
13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본고는 조선시대 백이 수용의 제 양상과 백이 비평 담론의 사적 맥락을 파악하기 위한 거시적 목표 아래 기획되었다. 사마천의ꡔ사기ꡕ그 중에서<백이열전>은 조선시대를 통틀어 가장 많이 읽힌 텍스트인데, 이에 대한 열독은<백이열전>에 대한 정치한 비평을 가능하게 했고 백이를 둘러싼 다양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이러한 비평과 담론에 대한 연구는 백이 수용 양상뿐만 아니라 그 시대를 이해하는 좋은 창이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에 그 동안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연암 박지원의<백이론>상하 편을 분석 텍스트로 삼아, 그간의 논의를 재점검하고 그 속에 담긴 박지원의 의식지향을 살펴 조선후기 백이 수용과 백이 담론의 한 양상을 밝히고자 하였다. 이때 백이론으로 대표되는 백이 담론의 사적 맥락, 즉 정온․김시습․윤기․오재순․송문흠․박제가․성해응 등의 백이 담론 속에 박지원의<백이론>을 둠으로써 새로운 읽기를 시도하였다. 그 동안 연구자들은 연암의<백이론>을 정치적 맥락, 즉 북벌과 북학의 틀 속에서 이해하였지만, 연암의<백이론>과 북벌론은 생각보다 그 관계가 매우 느슨하고 백이에 대한 비판 의도 또한 찾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백이론>상하 편이 북벌과 북학의 자장 속에서만 논의될 수 없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오히려 백이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기존의 백이 담론과 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연암은<백이론>을 통해 백이에 대한 당대의 단선적 이해를 지양하고 입체적으로 종합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상편에서는 수직적 구도 속에서 백이와 무왕과의 관계에 주목하였고, 하편에서는 수평적 구도 속에서 백이와 미자․비간․기자․태공과의 관계에 집중하였다. 이를 통해 박지원은 기왕의 백이 담론에서 논란이 되어 왔던 중요한 두 가지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고, 2차원의 좌표 위에서 백이의 위치를 정확히 지정할 수 있었다. 경도와 권도, 명분론과 혁명론 사이의 모순을 극복하고, 미지․비간․기자․백이․태공 등으로 대표되는 군신관계와 그것을 규율했던 에토스의 차이를 갈등 없이 봉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박지원의 이러한 지향은 인을 중심으로 한 그의 처세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본고에서 설정한 거시적 목표 속에 이상의 결론을 배치시키면, 다음과 같은 부가적 결론까지 도출할 수 있다. 연암 당시에도 오재순, 윤기, 송문흠, 박제가, 성행응 등 여러 인물들이 백이 담론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여 다양한 비평론을 양산하고 있었으며, 그 주된 논의 범주가 경도와 권도, 명분론(의리론)과 혁명론, 군신관계를 규율했던 에토스, 그리고 인(인)에 관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비평 담론의 논의 범주는 백이 수용의 범주와 그 방향을 규명하는 데 차후 일정 이상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Abstract
This paper was planned under macroscopic aim which was to research certain aspects of Boyi acception and historical context of critic discourse on Boyi in Joseon era. Boyi Liezhuan of Shiji written by Simaqian was the most text read through Joseon era. This diligently reading could brought political critic on Boyi Liezhuan and various debates surrounding Boyi. The study on these critics and discourses can be good windows to understand not only aspects of Boyi but also that time. Therefore this paper made an analytical text with Boyiron written by Yeonam Park Jiwon standing on center of debate. Then this paper reconsidered discussions done until now and read Park Jiwon’s consc- iousness directivity. So this paper revealed a certain aspect Boyi discourse and Boyi acception in the late Joseon. That time, Jeong On, Kim Sisuep, Yoon Gi, Oh Jaesun, Song Munhuem, Park Jaega, Sung Haeeung etc consisting of historical context on Boyi discourses representing Boyi theory, tried new reading through putting Boyi argument of Park Jiwon into Boyi discourse. Meanwhile researchers understood Yeonam’s Boyiron in political contexts that was the conquer the north and Bukhak. However Yeonam’s Boyiron and Yeonam’s the conquer the north argument were not close each other and were not found critical intention on Boyi. As a result, discussing Boyiron only in the field of the conquer the north and Bukhak could not exist. Also it closely related established discourses surrounding Boyi. Yeonam combined understanding generally on Boyi through Boyiron with not unilinear understanding of his time but various understanding. He noticed relation Boyi and King Mu in vertical structure in the first volume and focused relation Boyi and Mija, Bigan, Gija and Taegong in horizontal structure in the second volume. Through this, he solved two important problems become controversy and accur- ately located position of Boyi on two dimensional coordinate. Which overcame contradiction between justification and revolution. Which combined differences of the ruler and the ruled’s relation represented for Miji, Bigan, Gija, Boyi, Taegong etc and ethos ruling this relation without conflict. Park JIwon’s such directivity consistently influenced his use of life centered on endurance. The macroscopic aim set in this paper is into these result, which can draw additional conclusion like followings. Many people such as Yoon Gi, Oh Jaesun, Song Munhuem, Park Jaega, Sung Haeeung etc participated in Boyi discourses and mass produced various critics. These critics mainly dealt with justification and revolution, ethos ruling the ruler and the ruled’s relation, and patience. The range of these critics can help to reveal category of Boyi acception and the directivity and more.
참고문헌 (27)
- 金時習, "梅月堂集, in 한국문집총간."
- 金昌翕, "三淵集 in 한국문집총간."
- 成海應, "硏經齋集 in 한국문집총간."
- 宋文欽, "閒靜堂集 in 한국문집총간."
- 吳載純, "醇庵集 in 한국문집총간."
- 尹 愭, "無名子集 in 한국문집총간."
- 李 荇, "容齋集 in 한국문집총간."
- 鄭 蘊, "桐溪集 in 한국문집총간."
- 許 薰, "舫山集 in 한국문집총간."
- 박지원, "연암집상중하" (2007), 돌베개
- 박제가, "정유각집상중하" (2010), 돌베개
- 강혜선, "박지원 산문의 고문 변용 양상", pp.101~102 (1996), 태학사
- 김명호, "열하일기 연구", pp.125~126 (1990), 창작과비평사
- 박수밀, "박지원의 미의식과 문예이론", pp.70~ (2005), 태학사
- 이종주, "북학파의 인식과 문학", pp.112~ (2001), 태학사
- 강혜정, "백이 숙제 고사의 수용 양상과 그 의미", 한민족문화연구, 34(34), pp.3~30 (2010), 한민족문화학회
- 김민호, "계보학적 측면에서 접근한 백이․숙제 고사 연구", 한중소설논총, pp.50~53 (2002), 한국 중국소설학회
- 김석근, "조선시대 군신관계의 에토스와 그 특성-비교사상적인 시각에서", 한국정치학회보, 29 (1995), 한국정치학회
- 김영은, "백이론의 전통과 박지원의 백이론 연구", 석사, pp.2010
- 김주백, "왕안석의 산문에 대한 일고찰", 한문학논집, 22 (2004), 근역한문학회
- 김혈조, "연암 박지원의 사유양식과 산문문학", 박사, pp.1992
- 왕원주, "조선후기 북벌대의론의 변화와 영향: "조선중화의주의"에 대한 시론", 사회과학논집, 40(1), pp.1~36 (2009), 사회과학연구소
- 이성형, "燕行錄의 伯夷·叔齊 관련 漢詩 硏究-壬亂 收拾期를 中心으로-", 한문학논집(漢文學論集), 31, pp.177~212 (2010), 근역한문학회
- 李炫植, "?文丞相祠堂記?, 북학의 논리와 대비의 미학", 고전문학연구, 21, pp.4~128 (2002), 한국고전문학회
- 이현식, "연암 박지원 문학 속의 백이 이미지 연구", 동방학지, (123), pp.331~369 (2004), 국학연구원
- 정우봉, "한문 산문의 분석 방법과 실제 비평-조선시대<백이열전>비평자료를 중 심으로" (2005), 소명출판
- 허태용, "17·18세기 北伐論의 추이와 北學論의 대두", 대동문화연구, (69), pp.373~418 (2010), 대동문화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