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장판갑의 변화와 사용·의례적 맥락 검토
Reconsidering the ritual and practical uses of Vertical Plate Arm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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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종장판갑은 기술속성을 분석한 변화양상에 대해 치밀한 연구가 있어 왔으나, 근년에는 새롭게 자료가 추가되면서 종래의 분류만으로 설명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를 정리하기 위해 형식분류를 시도하였는데, 소매판이 있는 Ⅰ형과 소매판이 없는 Ⅱ형으로 먼저 구분하고, 고대부의 형태에 따라 A~D로 나누어 모두 7개의 형식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형식은 경주와 주변지역, 부산지역권, 김해지역권으로 나누어 4세기 전엽에서 5세기 전엽까지 4단계로 구분하였다. 1단계인 4세기 전엽에는 ⅠA형이 부산과 경주지역에서 주로 나타나며, 2단계에는 고대판의 기능을 개선하고, 소매가 없는 Ⅱ형이 개발되는 등 기능적인 개선을 추구하였다. 4세기 후엽에는 지역 간 기술정보의 교류가 활발하여, 궐수문장식이 신라권에서도 출현하고, 신라권의 특징인 경갑형 고대부가 김해와 부산지역에서도 서로 공유되는 양상을 보이며, 장식미도 극대화되었다. 5세기 전엽에는 신라권역과 부산지역에서는 종장판갑이 거의 사라지는 가운데 김해지역에서만 2단계인 4세기 중엽 이후로 사라졌던 소매판이 재유행된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한편 부산 복천동 86호에서는 4개체의 종장판갑이 복수부장되었는데, ⅠA형식인 86A는 제작기술의 비정형성으로 보아 1단계부터의 전세품으로 보았으며, 김해 망덕 Ⅰ-14의 예도 동일하다는 점에서 김해지역에서도 1단계에 ⅠA형 판갑이 존재할 것으로 보았다. 또한 종장판갑의 의례용설과 실용설을 검토하여 1~2단계까지의 변화과정이 활동이 개선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고, 파손부위를 수리하고 치수를 늘려가며 고쳐 입는 등 실용판갑의 성격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3단계 이후 장식요소가 커지고, 4단계에 김해지역에서는 소매가 있는 Ⅰ형이 재유행하는 것으로 보아 의례용 판갑을 별도로 제작하였을 것으로 보았다. 종장판갑의 매납상황을 살펴 매장의례 과정에서 당시인들이 어떠한 심적표상을 품었을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대형분의 경우 종장판갑을 해체·분리하거나 목곽 상부에 올려 두기도 하는데 이는 피장자의 무위를 상징하는 종장판갑을 파괴함으로써 차세대 지배자의 권위를 높여주는 이미지를 주었다고 보았다. 중소형분의 경우는 항아리 위에 눕히거나, 머리맡, 측면에 두는 경우 피장자의 무위를 강조하고 이를 고양하는 차원의 의례를 행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종장판갑을 소유한 계층은 어떠한 성격을 지녔는지 동반유물의 조합관계를 통해 살폈다. 신라권에서는 4세기 전~중엽까지 경주 외곽에서 군사적 방어를 담당한 전사집단의 지배층의 군사장비로 보았으며, 부산지역에서는 복천동고분군 집단 자체에 군사적 엘리트집단과 그 하위의 초급지휘자들이 형성된 것으로 보았다. 김해지역에서는 4세기대 대성동고분군을 중심으로 군사적 엘리트집단이 형성되었으며, 고 김해만 좌안을 따라 양동리와 망덕·퇴래리 등에 하위 군사집단의 무장으로 종장판갑이 사용되었다.
Abstract
In recent decades, a considerable number of vertical plate armor has been discovered through the archaeological excavations of the upper class burials in the 4th and 5th centuries Silla and Gaya. A very interesting sequencial change of plate armor types could be indicated by the typological classification and seriation study. Among the plates that make up the vertical plate armor, what should be noted in terms of temporal change are the top plate and sleeve plates. The initial types of armor produced in the early 4th century are characterized by the morphologically exaggerated top plate and the sleeve plates large enough to interfere with the warrior's behavior. However, the vertical plate armors from the mid-4th century could be classified as an utilitarian type where the top plate is reduced to the right size and the sleeve plates are no longer attached, which is effective in protecting the body without interfering with the warrior's movements. In contrast, in the late 4th century, the swirly patterned decoration attached on the chest plate became widely popular and the non-utilitarian armor types with sleeve plates that had already disappeared began to be produce. In the early 5th century, the supply of vertical plate armor seemed to decrease overall, and it was no longer produced in the Silla area. In particular, the armors discovered in the elite burials of the Gaya polities during the 5th century, which were attached with the small decorative plates or sleeve plates, are considered to have returned to the non-utilitarian type rather than developed into the utilitarian one. Especially during the period, various attempts have been made on where the armor is placed in the burial. In large-sized burials for the highest class, the vertical plate armor is placed on top of the burial chamber, not inside it, the deceased's space, while in medium-sized burials, it is placed on a location not far from the deceased in the burial chamber. It could be suggested that the act of deploying armor in burial rituals depends on whether the armor praises the military activities of the deceased or symbolizes the succession of military command 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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