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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계승 상징물에 대한 식산 이만부의 견해와 그 이론적 기반

Siksan Yi Manbu`s View on Symbol of Confucian-Cultural Succession and its Theoretical Ba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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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본 연구는 식산息山 이만부李萬敷의 『만동사의萬東祠議』를 통해 만동묘萬東廟와 대보단大報壇에 대한 그의 평가를 살펴보고, 그 이면의 중화계승의식을 확인하는 데 목적이 있다. 두 제향소는 18세기 이후 조선의 중화계승의식을 상징하며, 만동묘는 노론이 이러한 의식을 선점하였음을 보여준다. 식산은 『만동사의』를 지어 만동묘 건립을 비판하였는데, 여기서 그는 천자의 권한을 제후국 신하인 노론이 참람하였음을 주로 비판하는 한편, 조정 주도의 대보단은 그 시의성을 인정하였다. 이는 그가 예제의 명분을 엄정하게 지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중화계승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중화계승의식은 본래 초당파적 사유였으나 상징물 건립을 거치면서 비노론계 지식인은 이를 피탈당하였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식산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만동묘 반대여론을 모으고 조정에 이를 투사하는 것으로, 식산이 시도하였으나 무위에 그쳤다. 둘째는 중화계승의식에 상응하면서도 독자적인 사유를 제시하는 것으로, 식산이 이후 조선 학자들만의 학설을 엮은 『도동편道東編』을 저술한 점은 『만동사의』의 문제의식이 전개된 방향에 대해 고민케 한다.

Abstract

This study aims at Siksan Yi Manbu`s notion of confucian-cultural succession behind his view on Mandongmyo and Daebodan shrine through his writing Mandongsaui. The two shrines show strong notion of Confucian-cultural succession in Joseon dynasty`s court and academia, especially Mandongmyo shows this notion was dominated by Noron party. Siksan wrote Mandongsaui and criticized presumptuousness of Noron party. He mainly attacked that Noron party, the courtiers of vassal state, self-indulgently injured empire state`s rituals, and positively assessed Daebodan because he thought it was timely. He thought that succession with injured Confucian cause is not the true Confucian-cultural succession. For Neo-Confucianists in late Joseon, The notion of Confucian-cultural succession should be a suprapartisan thought, however non-Noron party scholars was deprived of this thought by Noron. To overcome suffering robbery, Siksan had two choices. One is gathering anti-Noron opinion and inform wrongfulness of Noron to the court, he tried it but failed. The other is present another thought which is equivalent to the notion of Confucian-cultural succession. The fact that his representative work Dodongpyun, which contains only Korean Confucianist`s thought, immediately after Mandongsaui, makes us wonder in which direction his awareness of the problem is go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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