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예산禮山 향천사香泉寺의 역사 정립과 존립 양상
A Study on The Historical Establishment and Presence of Yesan Hyangcheonsa Temple in the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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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조선시대 예산 향천사의 역사 정립 과정과 존립 양상을 검토한 글이다. 먼저 시대적 배경으로 조선시대 불교정책의 흐름을 검토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승려와 사찰을 국가재정의 재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추진되었다. 조선전기에는 기존에 불교계가 향유하고 있던 혜택을 축소시켜 국가재정을 확충시키는 방법으 로 정책이 진행되었다. 조선후기에는 이들을 크게 승군역僧軍役 의승역義僧役 지역 紙役에 활용하였다. 불교계는 국가의 재정을 보완하는 방안으로 활용되었다. 향천사는 17세기 무렵 백제의 고승 의각義覺을 창건주로 설정하는 것으로부터 역사 인식이 형성되었다. 이후 향천사의 중창을 담당했던 멸운滅雲-계리戒詈-쌍기 雙奇-영월暎月-영파影波로 이어지는 역사적 흐름을 확립하였다. 이를 통해 사찰의 역사가 중창이라는 사건을 중심으로 서술되었다는 것과 중창주를 중심으로 역사 인식이 형성되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향천사 역사의 정립은 1937년에 저술된 향천사사적책香泉寺事蹟冊을 통해 이루어졌다. 향천사는 예산현 내에서 주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사찰이었다. 부역실총賦役實摠 을 통해 확인한 결과 예산현 내의 사찰들은 의승방번전義僧防番錢을 부담하였고 종이 짚신 노끈 등과 같은 관아에서 필요한 물품을 공납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향천 사가 예산현의 부세 일부를 담당하는 한편 예산현은 향천사의 유지를 도와주었다. 향천사의 승려들이 이탈할 경우 부세의 공급이 곤란해졌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향천사의 존립은 예산현과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지속되었다고 할 수 있다.
Abstract
This article reviews the history of Hyangcheonsa Temple in Yesan during the Joseon Dynasty and its existence. First, the flow of Buddhist policies during the Joseon Dynasty was reviewed against the backdrop of the times. During the Joseon Dynasty, Buddhist monks and temples were used as financial resources for the government. During the early Joseon Dynasty, the policy was carried out by reducing the benefits previously enjoyed by the Buddhist community and expanding the national finances. During the late Joseon Period, they were greatly utilized in the military, righteous army, and regional areas. The Buddhist community was used as a way to supplement the nation’s In the 17th century, Hyangcheonsa Temple was established as the founder of the ancient Buddhist temple of Baekje. Later, the historical trend was established that led to the birthplace of Hyangcheonsa Temple, such as Myulun ― Gye-ri ― Ssanggi ― Yeongwol ― Yeongpa. Through this, it was confirmed that the history of the temple was described around the event called Jungchang, and that the perception of history was formed around Jungchangju. The history of Hyangcheonsa Temple was established through the “Hyangcheonsa Temple Book”, which was written in 1937. Hyangcheonsa Temple was the main temple in Yesan County. As a result of the confirmation through the Puyŏk Shilch’ong the temples in Yesan County were responsible for the translation of the righteous monk army and the supply of goods of paper, straw shoes, and strings. This is because if the monks of Hyangcheonsa Temple leave, the supply of taxes would be difficult. In conclusion, the existence of Hyangcheonsa Temple continued in close relations with Yesan Coun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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