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大壽가 받은 간찰 모음 『卿宰簡札』에 대한 연구
A Study on a collection of Cho Dae-soo received handwritten letters Gyeongjaeganchal (『卿宰簡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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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豊壤趙氏 가문이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한 자료인 『卿宰簡札』을 학계에 새롭게 소개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아울러 이 필첩은 17세기 후반과 18세기 초반의 당대 경재직에 오른 서인과 소론 인물들의 간찰을 수록하였기에 그 당시 정치사를 알 수 있고 당시에 명필로 불린 인물들의 필적이 담긴 간찰을 수록하였기에 그 당시 서예사도 알 수 있으며 수신인인 조대수의 유배 생활과 정치적 영향력 등을 알 수 있는 의의가 큰 필첩이다. 이 필첩은 趙弘鎭이 증조부 趙大壽가 당시에 경재직에 오른 인물들과 주고받은 간찰을 엄선하고 편집하여 성첩한 것이다. 이 필첩에 수록된 인물은 당시 조대수와 당색을 함께하면서 경재직에 오른 인물로, 대표적인 인물로는 예문관 대제학을 지낸 吳道一, 南龍翼, 육조 판서를 지낸 尹德駿, 吳命峻, 관찰사를 지낸 金盛迪, 呂必容 등이 있다. 이 필첩을 성첩한 趙弘鎭은 이 필첩 외에도 『筆跡類彙』를 성첩하였다. 조선 시대에 한 인물이 여러 필첩을 성첩한 경우가 드물다. 근대의 吳世昌이 『槿墨』과 『槿域書彙』을 성첩했지만 근대의 인물이 아니다. 『卿宰簡札』의 수신자인 조대수는 정치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여 많은 이들과 교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韓國文集叢刊』에는 사촌형제인 조현명趙顯命과 조문명趙文命을 제외하고 그의 글이 다른 문집에 수록되었거나 그를 위해 제문이나 편지 등의 글을 지어준 사례가 거의 없다. 그러므로 『卿宰簡札』을 통해 그와 교류한 인물들을 알 수 있다는 의의가 있다. 『卿宰簡札』에 수록된 인물이 당대에 문과에 급제한 문인들이므로 개인 문집이 있는 인물이 많다. 하지만 이 간찰은 문집에 한 통도 실려 있지 않기 때문에 원형성 뿐만 아니라 유일본으로서의 가치가 높은 간찰이다. 개인 문집이 없는 인물의 경우는 그 자료가 보존되기가 쉽지 않은데 이 필첩에 수록되어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으니 그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Abstract
The thesis aims to newly introduce to academia Gyeongjaeganchal(『卿宰簡札』), which was donated to the Korean Studies Institute by the Pungyang Jo family. Furthermore, this specimen of handwriting includes ganchal(簡札: vernacular letters) written by the Seoin(西人)and Soron(少論) figures in the positions of gyeongjae(卿宰: premiers and ministers) in the late 17th and early 18th centuries. So we can learn the political history of the era. It also includes the ganchal(簡札) written by renowned master calligraphers, providing insight on the history of calligraphy of the time. This specimen of handwriting is significant in that it contains information on the exile life and political influence of Jo Dae-soo, the addressee. Gyeongjaeganchal(『卿宰簡札』) was made by Jo Hong-jin, who carefully selected, edited, and compiled the ganchal(簡札), which were exchanged between his great-grandfather Jo Dae-soo and other leading figures in the positions of gyeongjae(卿宰) at that time. The figures featuring in this specimen of handwriting were of the same political party as Jo Dae-soo; the representative ones of them include Oh Do-il and Nam Yong-ik, Daejaehak(大提學) of Yemungwan(藝文館), Yoon Deok-joon and Oh Myung-joon, ministers of the six departments, Kim Seong-jeok and Yeo Pil-yong, provincial governors. Jo Hong-jin, the editor of this specimen of handwriting also compiled Piljeokyuhwi(『筆跡類彙』). It is rare in the Joseon period for a figure to compile multiple specimens. In modern times Oh Se-chang compiled Geunmuk(『槿墨』) and Geunyeokseohwi(『槿域書彙』) but Jo Hong-jin was not a figure of the modern times. Jo Dae-soo, the addressee of Gyeongjaeganchal(卿宰簡札』) was politically active and closely interacted with many people. However, The Comprehensive Korean Collections of Literary Works(『韓國文集叢刊』) reveals that, except in the collections of literary works by his cousins Jo Hyun-myung and Jo Moon-myung, Jo Dae-soo’s writings are not found else where, and that very few funeral orations or letters written for Jo Dae-soo are found. Therefore, Gyeongjaeganchal is significant in that it provides information on the figures who interacted with him. As the figures featuring in Gyeongjaeganchal(『卿宰簡札』) were literary men who passed the civil service examination at that time, there were many who possessed their own personal collection of literary works. But no letter of Gyeongjaeganchal(『卿宰簡札』) is found in any personal collection of literary works, it is highly valuable in terms of originality and uniqueness. It is not easy to preserve the historical records of a figure without a personal collection of literary works, but such data have been well preserved so far in Gyeongjaeganchal(『卿宰簡札』), it is thought to be of great va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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